kklist21
| 추천 (0) | 조회 (277)
2011-06-03 17:30
어떤 사람이 밭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밭에서 골라낸 돌들을 밭 옆의 길에 버렸습니다. 어느 랍비가 지나가다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왜 당신은 당신의 소유가 아닌 밭에 있는 돌들을 영원히 당신의 소유인 공공 도로에 버립니까?” 밭에서 일하던 사람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계속 돌들을 공공 도로에 버렸습니다. 몇 년 후 그는 밭을 팔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소유가 아닌 밭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길을 가던 그는 예전에 그가 버렸던 돌에 걸려 넘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그때야 그는 랍비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습니다. (탈무드 중에서, 최명덕 번역·수정)
이 이야기는 사유 재산은 진정한 소유가 될 수 없고 공유 재산이야말로 진정한 소유라고 가르친다. 사유 재산은 소유권이 이전될 수 있기 때문에 영원히 내 것이라 할 수 없지만 공공 재산은 타인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으므로 진정한 내 재산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보니 그림이 있어야 할 쪽이 잘려 나가고 없었다. 아마 어느 학생에게 그 그림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여기저기 밑줄을 그어 놓은 책도 여러 권 있었다. 어느 학생에게 중요한 구절이었던 모양이다. 내 것 아니라고 마구 다룬 것이다.
대학원 시절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외서를 분류하여 번호를 부여하는 작업으로 영어서적이 내 담당이었다. 말하자면 책에 호적을 부여하는 일이었는데 잘못하면 책이 엉뚱한 곳에서 미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함이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개최한 분류법 세미나에도 참석해야 했다. 알고 보니 한 권의 책이 도서관 서가에 비치되기 위해서는 분류 작업 외에도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도서관 책은 책값 외에도 분류, 보관비용 등 상당 액수의 행정 비용이 추가된 비싼 책이었다.
그러나 정작 도서관 책이 일반인 소유의 책보다 귀한 이유는 책값보다는 다른 데 있다. 도서관 책이 공공 소유라는 사실이다. 도서관 책 한 권이 하는 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책 한 권 때문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 책은 세대를 넘어 우리의 자식과 손자들에게도 읽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멀리까지 바라보지 않아도 도서관 책은 내가 원할 때 언제나 읽을 수 있으니 영원한 나의 소유라고 말할 수 있다. 혹 내가 파산해도 또는 내 책이 불에 타 다 없어진다 하여도 도서관 책은 나의 영원한 재산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책, 가방, 시계, 컴퓨터, 자동차, 집 등은 우리의 영원한 소유물이 아니다. 언젠가는 폐기 처분될 것이 대부분이요 누군가에게 팔리는 순간 더 이상 우리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로, 공원, 학교, 항만, 하천, 철도, 문화재, 사적지, 명승지, 도서관, 마을회관 등은 영원한 우리의 재산이다. 공유 재산이라 아무도 팔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부터인가 건국대학교 앞 어린이 대공원이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높은 수준의 공공성이 확보된 것이다. 학교에서 가까워 글을 쓰다 답답하면 산책하곤 하는데 이렇게 아름답고 큰 공원을 개인이 소유할 수 있을까? 웬만한 사람의 경제력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 어마어마한 공원을 소유하고 있다. 이 정도 정원을 소유하고 누린다니 웬만한 왕 부럽지 않다. 공원에서 산책하고 운동하는 많은 시민들, 그들에게 왕 부럽지 않은 이런 행복을 제공하는 일은 공유 재산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부자 나라가 되려면 공공시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전 국민이 부자가 되는 길이다. 공공재산이 많은 나라 그 나라가 부자 나라다. 도로가 잘 뚫린 나라, 사람이 걷기 편하게 인도를 잘 만든 나라. 항만이 잘 발달한 나라, 멋지고 편리한 공항을 가진 나라, 철도가 전국으로 편리하게 달리는 나라, 사적지를 잘 보존하는 나라, 명승지를 잘 관리하는 나라, 강변이 공원으로 꾸며진 나라, 동네마다 놀이터가 갖추어진 나라, 마을마다 도서관이 있고 스포츠 센터가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행복한 나라, 부자 나라다. 이런 공공재산을 많이 소유한 국민이야말로 부자 국민이다.
도서관 책 함부로 찢지 말자. 그 책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소유다. 공원의 나무 함부로 꺾지 말자. 그 나무야말로 진정한 나의 소유다.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를 위한 귀한 재산이다. 천여 년 전 “어리석은 사람이여, 왜 당신의 소유가 아닌 밭에 있는 돌을 영원히 당신 소유인 공공도로에 버립니까?”라고 물었던 랍비의 질문은 오늘도 유효하다. 아래의 사진은 얼마 전 잠실의 유명 스포츠 센터 목욕탕에서 찍은 사진이다. 탕에 앉아 아래의 글을 읽으며 부끄러웠다. 우물에 침을 뱉는 자는 언젠가 반드시 그 물을 마시게 된다는 유대인의 경구를 기억하자.
최명덕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이스라엘학회장, 한국이스라엘연구소장, 한국이스라엘친선협회 이사, 한국이스라엘문화원 이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역서로 《유대인 이야기》《지도로 보는 이스라엘 역사》《유대교의 기본진리》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