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곱 살 난 장난꾸러기 아들 녀석이 바늘을 가지고 놀다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세 식구는 바늘을 찾느라 온 집안을 구석구석 뒤지고 다녔지요.
작은 바늘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가지고 놀 게 없어서 하필 바늘을 가지고 놀아? 바늘이 얼마나 위험한데….”
눈이 침침하고 허리가 아파 포기하고 싶었지만 바늘이 혹시 옷이나 이불에 묻혀 있을까 걱정돼 열심히 찾았습니다.
얼마나 찾았을까….
드디어 침대보 레이스에 꽂힌 바늘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깊은 산에서 산삼을 캔 듯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 소리에 아내와 아이가 놀라 뛰어왔고, 저는 대단한 보물이라도 찾은 양 우쭐했습니다.
그때 아들 녀석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말했습니다.
“와, 아빠 최고다! 그것도 한쪽 눈으로.”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에 아이는 얼른 손으로 입을 가렸고,
아내와 저는 멍하니 얼굴만 마주 본 채 할 말을 잃었습니다.
2년 전에 당한 교통사고 현장이 어쩔 수 없이 떠올랐습니다.
중환자 상태였던 저에게 누군가 말을 건넸습니다.
“아저씨! 정신 차리세요.
눈을 심하게 다치셔서 지금 수술해야 합니다.
어쩌면 한쪽 눈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부인께서도 의식이 없으니 급한 대로 수술을 하겠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다급한 말이었습니다.
수술은 했지만 저는 결국 한쪽 시력을 잃었고, 석 달 동안 투병생활을 해야만 했지요.
잃어버린 한쪽 눈보다 더 큰 슬픔은 사랑하는 딸아이의 죽음이었습니다.
엄마아빠 없는 하늘나라에 딸아이를 혼자 보내 놓고 그래도 살겠다고 병원에서 수술 받고, 약 먹는 제가 미웠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증오하면서도 살아야 했던 이유가 남은 가족 때문이었다고 말한다면 변명일까요?
아내와 아들을 위해 일어서야만 했습니다.
2년 동안 숨겨 온 사실을 아이 입을 통해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줄까 봐 비밀로 했는데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자꾸만 눈물이 흘렀습니다. 곁에 있던 아내와 아들의 눈가에도 어느새 눈물이 맺혔습니다.
다행히 한쪽 눈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볼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죠.
“그래, 아빠는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어.
네가 알고 놀랄까 봐 그동안 비밀로 했던 거야.
그런데 우리 아들이 알아 버렸으니까 이젠 아빠 맘이 더 편하구나.”
아이는 제가 퇴원할 때 우연히 할머니와 엄마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알고 있었는데, 이제껏 내색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철부지로만 알았던 아들이 대견스러웠습니다.
“아빠! 난 이 비밀을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을 거야.”
천진하게 말하며 안기는 아이 체온이 햇살만큼 따뜻했습니다.
사고 후 장애 1등급 판정을 받고, 8년 동안 다니던 중장비 회사도 정상적인 근무가 어려워 그만뒀습니다.
집안에만 있던 아내는 파출부, 식당종업원, 공사장잡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몸이 약하던 아내는 하루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면 자기도 모르게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곤 했죠.
그럴 때면 저도 속으로 마른 울음을 삼켜야 했습니다.
그 무렵 아들도 뇌수막염에 걸려 열흘 밤낮 사경을 헤맸습니다.
후천적 장애를 가진 사람은 한집에 나 하나면 족하다는 생각에 열꽃이 핀 아들을 붙들고 얼마나 울었던지….
아들이 회복된 뒤 저희 사정을 잘 알고 계신 한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재래시장에 조그만 구두수선집을 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즐겁게 구두를 수선합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지금은 제법 단골손님도 많습니다.
손님들 구두에는 오늘에 발을 딛고, 내일에 희망을 담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향기가 배어 있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은 없고, 열심히 사는 사람의 향기보다 더 그윽한 향기는 없다고 믿기에 행복합니다.
한쪽 눈으로 밝은 세상만 바라보며 더 행복하게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