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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어머니의 삶을 사랑합니다
oh11k | 추천 (4) | 조회 (363)

2011-08-26 17:46

"따르릉" 새벽을 깨우는 알람 소리와 함께 오늘도 내 귓가를 맴도는 소리. "달그락 달그락",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어머니의 연주 소리에 오늘도 에너지를 듬뿍 받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무더웠던 그해 여름, 어머니는 빠듯한 살림 탓에 직장에 다니셨지요. 초등학생이던 나는 남동생과 놀아 줄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날따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왠지 무거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도착하니,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 벌어져 있었지요. 마당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 틈으로 우는 어머니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동생은 계단에서 떨어져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었지요. 어린 남동생이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나도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남동생은 머리를 다쳐 의식이 없었고, 마치 식물인간 같았습니다.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다친 자식을 보는 어머니의 가슴에는 백 배 천 배 더 아픈 못이 박혔을 겁니다. 깨어나지 못한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어린 아들을 가슴에 부둥켜안고, 살리겠다는 생각에 맨발로 병원을 찾아 뛰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남동생은 몇 달 동안 잠만 잤고, 어머니의 얼굴은 날마다 눈물콧물 범벅이었어요. 의사 선생님은 깨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하셨지만 어머니는 희망의 끈을 꼭 붙잡고 밤낮 할 것 없이 남동생에게만 매달려 간호하셨습니다. 하늘도 어머니의 지극 정성에 감동했는지 드디어 남동생이 깨어났습니다. 비록 남동생은 장애를 갖게 됐지만 어머니가 희망을 버리셨다면 아마 지금의 남동생은 없었을 겁니다.

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취업을 하지 못하자 어머니는 또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동생도 일하고 싶은 마음에 이곳저곳을 찾아 나섰지만 장애인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너무나 차가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살다 보면 기회가 오는 모양입니다. 남동생은 "한울 장애인 자활센터"에서 컴퓨터를 배웠는데, 그곳에서 장애인 세차팀을 만들어 일하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제 더 바랄 것이 없다며 기뻐하셨고, 남동생 역시 웃음도 많아지고 적극적으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메말랐던 얼굴에도 촉촉한 단비가 내린 듯했지요.

장애인 세차팀은 초기엔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일했는데 경성대학 캠퍼스 내에 자리를 얻으며 안정되게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차갑게만 느껴졌던 세상에 고마운 분들이 참 많은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장애인 세차팀에 대한 입소문이 나자 방송국에서 취재를 왔습니다. 아들 덕택에 어머니는 방송 출연까지 하셨는데, TV 화면에 비친 아들과 당신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야야. 연예인 부럽지 않다. 이젠 나도 많이 늙었다. 주름 봐라.”

어머니가 말씀은 안 하셨지만 지난 56년 동안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지혜롭게 그 길을 걸어오셨지요. 그 속엔 나의 암 투병도 있습니다. 암 진단을 받은 뒤 어머니 얼굴만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어머니의 가슴에 또 못을 박는 것 같아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지요. 항암치료를 받는 6개월 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괴롭고 힘든 나 자신과의 싸움을 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며 정신을 바짝 차리곤 했지요.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와 보살핌으로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검사 결과도 아주 좋았어요.

얼마 전 남동생에게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돈 벌어서 엄마 제주도 여행 보내 드리는 것이라더군요. 그 말을 들으니 가까운 제주도도 한 번 못 가 보셨구나 싶어 가슴이 메입니다.

“엄마, 이제 힘들었던 기억 다 잊으세요. 앞으로 좋은 날만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지금처럼 저희 손 꼭 잡아 주시고 남은 길 같이 걸어가 주세요. 어머니의 삶을 사랑하는 딸이 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필자 : 최여진님
출처 : 월간《좋은생각》 2007년 0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