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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홀로서기-서정윤
글루미이당 | 추천 (0) | 조회 (204)

2024-06-08 05:58

홀로서기 - 서정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에 한쪽을 위해 헤매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에 아무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할 수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는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어느 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멀어져 갈 때​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지는 가슴 한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떠나는 사람을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5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마음을 또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은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어겨 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 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6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 서기>를 익혀야 한다.

7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 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 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