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오직 이 순간
부채라도 하나 있다면
그 무자비한 한여름 삼복더위도
선풍기에 에어컨을 켜고도
맥없이 무너지는 우리
태양의 고도 나지막이 깔리고
쏘아보던 눈빛 순해질 해질녘이면
청이하고 나서는 산책길마다
애타게 그려보는 너
지독한 모기도 가여운 하루살이 떼도
털복숭이 청이의 목덜미를 지나
헐떡이는 숨결 위에 놓을 바람 한줄기아니 그런 종이부채라도 하나 있었으면.
문순심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