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ID/패스
낙서 유머 성인유머 음악 PC 영화감상
게임 성지식 러브레터 요리 재태크 야문FAQ  
[퍼온글] 능소화(凌霄花) ― 최재영
bibig00 | 추천 (0) | 조회 (242)

2024-07-25 08:25

한동안 넝쿨만 밀어 올리던 능소화나무

좁은 골목길 담장에 기대어

황적(黃赤)의 커다란 귀를 활짝 열어젖힌다

한 시절 다해 이곳까지 오는 길이

몽유의 한낮을 돌아 나오는 것 같았을까

지친 기색도 없이 줄기차게

태양의 문장들이 돋아난다

서로를 의지하는 것들은

보지 않아도 뒷모습이 눈에 익는 법

오랫동안 등을 맞대고 속내를 주고받던 담장이

울컥, 먼저 뜨거워진다

누군가에게 이르는 길은 깊고도 고되어

이리 눈물겨운 기억만으로도 다시 피어나는 것이니

묵정밭 잡풀들도 온 정성으로 피어난다 했으니

내겐 꽃시절도 서릿발처럼 매운 까닭이다

온 몸의 촉수를 열어 발돋움하는 어린 잎들

그들의 발 빠른 행적이 퀴퀴한 골목을 쓰다듬는다

막 당도한 여름들이 능소화 곁으로 모여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