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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넝쿨만 밀어 올리던 능소화나무
좁은 골목길 담장에 기대어
황적(黃赤)의 커다란 귀를 활짝 열어젖힌다
한 시절 다해 이곳까지 오는 길이
몽유의 한낮을 돌아 나오는 것 같았을까
지친 기색도 없이 줄기차게
태양의 문장들이 돋아난다
서로를 의지하는 것들은
보지 않아도 뒷모습이 눈에 익는 법
오랫동안 등을 맞대고 속내를 주고받던 담장이
울컥, 먼저 뜨거워진다
누군가에게 이르는 길은 깊고도 고되어
이리 눈물겨운 기억만으로도 다시 피어나는 것이니
묵정밭 잡풀들도 온 정성으로 피어난다 했으니
내겐 꽃시절도 서릿발처럼 매운 까닭이다
온 몸의 촉수를 열어 발돋움하는 어린 잎들
그들의 발 빠른 행적이 퀴퀴한 골목을 쓰다듬는다
막 당도한 여름들이 능소화 곁으로 모여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