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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 입구에는 범종이 되어버린 고목이 있다 큰 울음으로 재앙을 알렸다는 전설을 품고 천 년을 넘게 서서 종소리에 골고루 햇살을 찍어바르는 은행나무가 있다
나비 날개 같고 황금 부채 같은 소리 살결을 만지면 금빛 바람이 건너와 삭신에 쌓인 먼지 털어내고 잘 마른 볕 한 장 가만가만 핏속으로 날아든다
맥놀이가 뭇 가슴을 열어젖혀 아망스러운 우울을 달래는가 하면 말랑말랑한 소리가 데워놓은 온기가 혓바닥이 덧낸 생채기까지 핥는다
눈부처까지 노랗게 물들여 놓은 종소리에 휩싸여 바람이 머물다 간 소리 한 잎 쥐어보면 은행나무 범종이 밟아온 축축한 뒤안길이 저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