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ID/패스
낙서 유머 성인유머 음악 PC 영화감상
게임 성지식 러브레터 요리 재태크 야문FAQ  
[퍼온글] 한계령에서 1 ― 정덕수
bibig00 | 추천 (0) | 조회 (121)

2025-02-12 19:24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메일지.

삼만 육천오백 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매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