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分身)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대고 나직이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이 피어오르는 한 떨기 영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