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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 The Road
야설의뒷문 | 추천 (0) | 조회 (683)

2011-05-18 19:45

 

 
 
<더 로드 The Road> (2009)
 
 
 
 
 
 

제가 <더 로드>라는 영화를 본 것은 작년 1월이었습니다.

영화를 본 후에 리뷰를 써야지 생각하다가 어영부영 잊어버리고 말았었는데
다시 이 작품이 생각난 것은 지난 일본 동북지방 지진 때문이었습니다.

대지진으로 도시와 마을과 그 속에서 살던 많은 사람들을 덮친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고 난
참혹한 현장의 사진들을 보다가 문득 어디서 봤던 풍경인 것만 같은 기시감이 느껴졌습니다.

쓰나미가 휩쓸고 빠져나간 황량한 폐허 위에 항구에서 밀려온 커다란 배가
옆으로 뒤집어진 채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는데요..
그 사진을 보다가 문득 기시감을 느꼈던 것이죠.

(그 사진을 퍼오려고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어느 곳에서 그 사진을 봤는지? 못 찾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생각하다가 문득 1년도 훨씬 전에 본 한 영화의 장면이 떠오른 겁니다.
바로 영화 <더 로드>에서의 황량하고 암울했던 세계의 모습이었지요.

 

 
(다행히 영화 장면은 스틸컷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 스틸도 이 영화의 원작소설에 비하면 상당히 밝게 각색된 비주얼이라고 합니다.
원작소설을 읽으면 그야말로 "재"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세계가 상상된다고 하니까요.

<더 로드>는 코맥 매카시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코맥 매카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을 쓴 작가이기도 하죠.

저는 아직 이 소설을 읽지 못했습니다만,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의 평은 대략 이렇습니다.

"이 소설이 과연 제대로 영화화될 수 있는 소재인지 모르겠다. 도저히 무리다.."
"영화화되려면 상당한 각색이 필요하고, 그럼에도 흥행성있는 영화를 만들기는 힘들거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원작에서 상당히 각색이 된 것 같습니다.

건조한 문체로 종말을 맞은 인류의 암울한 잿빛 세계를 펼쳐낸 원작소설은
영화화에 용이하게 원작보다 통속적이고 화려한 세계(?)로 각색되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본 이 작품은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상당히 어둡고 암울합니다. 

그리고 절대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죠.

이 같은 암울한 소재라도 얼마든지 상업용 액션영화를 만들 수 있는 헐리웃이지만...
이 영화는 마치 구도자를 그리는 종교영화처럼.. 묵묵히 인류의 종말에 맞서서
희망의 불씨를 안고 길을 떠나는 주인공들의 여정만을 보여주는 로드무비입니다.


<더 로드>의 세계는 근 미래로 추정되는 인류의 종말기입니다.

인류에게 어떤 재앙이 닥쳤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재앙 이후의 잿빛 세상만 묘사합니다.

푸르렀던 세상은 모두 불타 사라졌습니다. 산과 바다와 하늘은 온통 잿빛 뿐입니다.
낮은 태양이 보이지 않아 잿빛이 짙어졌고, 밤은 어둠보다 더 어두워졌습니다.

인간이 식량으로 삼을 수 있는 농산물도, 동식물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재앙과 식량난 속에서 인류가 쌓아온 이성과 문명은 무너져버린지 오래입니다.

폐허가 된 세상을 떠돌던 수많은 난민들도 이제 거의 사라져
살아있는 사람을 구경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소수의 살아남은 인류만이 생존에 몸부림치는 세상..
하지만 어쩌면 사람을 마주치기 어려운 것이 더 다행인 세상입니다.

이제 소수가 살아남은 인간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식인종들의 세상..
카니발리즘이 판치는 야만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힘이 강한 무리의 인간들은 약한 인간들을 사냥하여 잡아먹고,
심지어 사람들을 잡아다 가축처럼 사육하며 식량으로 씁니다.

이런 야만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식인종들로부터 살아남기위해
이리저리 난민으로 잿빛 세상을 떠돕니다.

인간의 문명도 존엄도 사라진 세계..
약육강식으로 인간들이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끔찍한 세계..

“마침내 만물의 덧없음”이 드러난 그 세상에서
아직 인간의 존엄을 잃지않은 소수의 사람들이 기대할 수 있는 건 오직 죽음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런 묵시록적인 세계 속에서도 한줄기 희망의 빛을 이야기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 두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절망 속에서 태어난 어린 아들은 "순수한 희망"을 상징합니다.

황량한 잿빛 세상을 끊임없이 걸어가는..
위험과 야만이 도사리는 여정 속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속삭입니다.

“우린 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란다..”

그 불씨는 야만이 판치는 세상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인간의 이성과
인류 문명을 다시 피워 올리게 될 희망의 불씨입니다.

아직은 미약하고 위태로운 불씨지만 아버지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거센 바람으로부터 보호하며 작은 불씨를 운반합니다.

그 불씨는 그의 어린 아들입니다.

순수한 희망을 상징하는 메시아입니다.

세상을 비관하여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아내로부터 마지막으로 부탁받은
순수함과 이성을 지닌 영혼인 아들은 아버지에겐 내일을 위한 불씨입니다.

그는 그 불씨를 꺼드리지 않기 위해 오늘도 숭고한 순례를 계속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도 아들도 각각 다른 선택과 결말을 맞이합니다.

순수한 새 영혼인 아들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지만,
너무나 크나큰 절망을 겪은 아버지는 인간들을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또한 생존을 위해 아들 앞에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그런 경계심과 행동은 아들을 지키기위한 것이었지만..
구원과 희망의 끈이 계속 그들 부자를 따라다니며 여러 번 기회를 주었음에도
결국 아버지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내내 거부하다가 결말을 맞이합니다.

(스포일러라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지만..)
<더 로드>의 마지막 장면.. 어린 아들의 마지막 선택과 행동은..
이 작품의 메시지, 즉 인류의 "희망"이 어떤 것인지를 상징한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생각해보니.. 이 근미래의 묵시록은
어느 곳보다 지금 한국의 현실을 상징할 수 있는 우화라는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