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약칭 "놈놈놈!"("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제가 극장에서 본 128번째 영화네요. 영화 제목이 길어서 약칭으로 "놈놈놈!"이라고 불리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한때 우리나라에서 과거 풍미했던 만주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다시 시도한 작품입니다. 이 감상글에선 약칭인 "놈놈놈!"으로 호칭합니다.
만주 웨스턴이란 60~70년대 아직 고도 성장기가 아니던 시절에 만들어진 한국판 서부 영화로서 한국에서 미국 서부 대신 1910~40년대 사이의 혼란스럽던 만주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서부극입니다. 그 당시에는 꽤 인기있는 장르에 속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이 고도 성장을 기록하면서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장소 자체가 줄어들고 서부극이란 장르의 인기도 낮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도태되었다고 하는데요.
한국영화 르네상스와 블록버스터 붐에 편승하여 이런 만주 웨스턴을 시도해보자는 움직임이 나타나서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이 "놈놈놈!"인데요. 처음에는 실제 만주에 가서 찍으려고 했지만 만주도 많이 변했기에 결국 실제 촬영은 몽골 사막에 가서 하게 되어 실제 지역 지형 배경과는 다르지만 대신 진짜 사막에서 펼처지는 서부극이 되었습니다. 1910~40년대 만주가 개발이 덜 되었기는 하지만 사막보다는 숲과 초원들이 어우러진 지형이었기 때문에 사막이 무대가 되는 서부극이 된 것은 리얼리티를 해치는 것이지요.
근데 어차리 영화 자체가 보물 지도를 두고 다투는 비현실적인 내용이고 보물 지도에 나오는 보물이 유전인데 실제 유전은 1959년이 되어서야 발견되기 때문에 제정 러시아 시절에 이미 유전이 발견되어 이 유전 위치가 표시된 보물 지도를 두고 만주의 온갖 범죄자들부터 한국 독립군, 일본 만주 관동군까지 다툰다는 내용 자체가 그냥 리얼리티는 버린 영화였습니다. 일명 역사에서 모티브만 가지고 온 팩션 영화지요. 팩션 영화라는 면에선 굳이 과도한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것은 도리어 무리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 주연은 좋은 놈에 정우성, 나쁜 놈에 이병헌, 이상한 놈에 송강호를 캐스팅했는데요. 일단 좋은 놈으로 나오는 정우성의 액션 연기는 말 그대로 간지 납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일본 만주 관동군의 추격 부대를 말 타고 단신으로 달리면서 소총 사격으로 쓸어대는 것은 너무 과장이 심하다고 평가할 수는 있지만 간지는 정말 대단합니다. 한국 독립군 출신 현상금 사냥꾼인데 영화에선 좋은 놈에 속한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정우성은 액션 연기는 정말 간지인데 직접 대사치는 연기는 정말 깨더군요. 굉장히 어색해서 액션 연기와 일반 대사 연기가 정말 부조화가 심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말 타고 총 쏘는 간지 액션 연기 때문에 용납되지 아니면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수준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병헌이 나쁜 놈으로 나오는데 광기어린 범죄자로서 간지는 꽤 나쁘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이병헌이 연기 잘한다고 느낄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병헌의 정우성에 비해 가장 큰 딱 하나 약점이 키가 정우성에 비해 10cm 정도나 작다는 것인데 영화에선 키높이 구도로 어느 정도 보완합니다. 그래도 조금 작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더군요. 그리고 이병헌이 아무리 광기 어린 악한의 연기를 보여주어도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상한 놈으로 송강호가 나오는데 송강호의 완전히 상반된 연기에 밀리거든요. 송강호는 전반적으로 후반부 클라이맥스까지 코믹 연기를 주로 담당하는데 정말 이 영화의 주 재미는 송강호의 코믹 연기입니다. 말이 않되는 장면같은데 송강호가 연기하면 말이 되는 코믹 연기가 정말 대단하더군요. 근데 이렇게 코믹 연기를 하다가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선 조선에서의 예전 송강호가 나오면서 완전히 상반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데 이 카리스마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선 결국 가장 비중이 높은 인물이 송강호입니다. 정우성이나 이병헌은 대체하는 배우가 있을 것 같지만 송강호는 대체가 가능한 배우를 찾는 것이 아무리 보아도 불가능해 보여요. 근데 이 영화의 한가지 한계는 영화가 약간 지루하고 재미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엄청 재미있는 영화라고 평가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간지나는 정우성과 이병헌에 송강호의 코믹 연기가 볼만한 영화라는 평을 내리게 만들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그렇게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까요.
영화 내에서 각각의 재미는 있는데 전체적인 재미는 떨어지는 조금 요상한 영화였습니다. 칸 버전 "놈놈놈!"은 다를까 싶어 다시 보았는데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면 김지운 감독은 스타일러쉬한 작품은 만들 수 있어도 관객에게 재미를 극한까지 주는 그런 영화는 만들기 힘든 감독이였을지도 모르겟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