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극장에서 본 영화 150번째 영화로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감독인 강제규 감독이 연출하고 한국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전쟁 블록버스터 "마이 웨이"입니다. 제작비만 300억원이나 투입되었고 처음 기획 때에는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가 직접 투자하여 전세계 배급이라는 계획을 세웠던 말 그대로 한국영화로선 꿈의 프로젝트였던 영화였지요. 이 영화의 처음 기획은 우연히 발견된 노르망디의 한국인이라는 사진에서 시작됩니다.
조선인이지만 일본군으로 참여한 노몬한 전투에서 소련군에 포로가 되고 독일과의 전쟁에서 병력 부족에 시달리던 소련군에 편입되어 싸우다가 이번에는 독일군에게 포로가 되고 역시 지속되는 전쟁에서 병력 부족에 시달리던 독일군에 편입되어 노르망디에 상륙하는 연합군과 싸우다가 다시 연합군에 포로가 된 조선인의 사진 한장으로 이 영화의 기획이 시작되었던 것이지요.
한명의 개인이 어쩌다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말려들어가 아시아 동쪽 끝에서 아시아를 넘어서 유럽에서도 서쪽 끝까지 향하게 된 여정이었고 그것도 세개의 다른 군복을 입고 세번이나 포로가 되는 정말 흔치 픽션이라고 해도 믿기 힘든 현실 사례였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영화화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매력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마이 웨이"는 무려 유명한 3번의 전투, 노몬한 전투, 스탈린 그라드 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영화에 표현하여야 했고 덕택에 제작비가 워낙 엄청난 탓에 제작비만 건지려고 해도 무려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해야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국내 흥행에서 200만 돌파에 그치는 엄청난 실패를 하고 맙니다. 일단 영화가 재미가 없고 시나리오에서 스토리 전개가 문제가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마이 웨이"에서 처음 문제가 된 것이 강제규 감독이 처음 시나리오를 쓴 작가를 밀어내고 자신이 상당 부분 시나리오를 고치면서 처음에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가 투자하기로 한 것이 취소됩니다.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는 강제규 감독이 고치기 전 시나리오를 보고 제작비 투자와 전세계 배급을 결정한 것이었는데 할리우드 진출을 위해 미국에 머무르던 강제규 감독이 "마이 웨이" 연출을 제의받고 귀국해서 "마이 웨이"의 감독을 맡으면서 작가와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시나리오를 고쳤습니다.
하지만 강제규 감독이 임의로 상당 부분을 고친 시나리오를 본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는 흥행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투자를 취소하고 결국 대신 국내 최고 투자배급사인 CJ E&M이 주 투자자로 나서고 배급을 맡기로 하지요. 하지만 결국 강제규 감독이 임의로 변경한 시나리오는 이 영화를 파국으로 몰고가는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는 한국인으로 장동건, 일본인으로 오다기리 조의 투톱 체제였는데요. 장동건이 한국 마라토너인 준식, 오다기리 조가 일본인 마라토너이며 일본군 장교가 되는 타츠오를 맡았습니다. 영화의 첫 부분부터 중간까지는 그렇게 전쟁 영화로선 나쁘지 않았습니다.
준식의 집안이 타츠오 집안의 하인으로 살면서 준식과 타츠오가 마라톤에서의 경쟁자가 되고 타츠오의 할아버지 암살에 준식의 아버지가 잘못은 없었지만 말려들면서 준식 집안은 타츠오 집안 하인에서 쫓겨나고 준식은 인력거꾼이 되는데 준식은 손기정의 도움으로 마라톤 예선전에 출전하여 타츠오와 정정당당한 경쟁 끝에 이기지만 편파 판정으로 실격되자 조선인들의 폭동이 발생하여 그 사태에 대한 책임으로 일본군에 강제 징집됩니다.
그리고 만주의 노몬한으로 끌려가 일본군과 소련군의 노몬한 전투에 강제로 끌려들어가는데 여기에 타츠오가 영관급 장교가 되어 부대 지휘관으로 부임하여 소련군 기갑부대에 대한 육탄 공격을 강요하고 일본군의 전차에 대한 육탄 공격은 소련군의 1차 공격은 그럭저럭 막아내지만 2차 공격은 이미 피해가 큰 일본군으로선 막아내지 못하고 결국 일본군은 패전하여 준식과 타츠오를 비롯한 일본군은 포로가 되지요.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그래도 영화가 볼만 했습니다. 특히 노몬한 전투에서 소련군의 전차 부대를 상대하는 일본군 육탄 전술은 상당히 잘 고증되어 일본군의 당시 현실을 굉장히 잘 보여주더군요. 제대로 된 대전차 무기가 없다 보니 철저하게 병사가 직접 폭탄을 들고 육탄 공격을 전차에 가해야 하는 당시 일본군의 처절한 대전차 전투 현실이 정말 실감나게 영화에선 표현됩니다.
그나마 소련군 기갑부대가 2차 대전 이전의 사실상 경전차 정도의 전차로 구성된 부대였기에 이런 육탄 공격이 상당히 효과를 보았던 것이고 2차 대전으로 접어들어서 중전차들이 대량으로 편제되기 시작한 이후에는 "마이 웨이"에선 표현된 대전차 육탄 전술은 단지 병사만 소모시킬 뿐 어떤 효과적인 대전차 전투 효과도 내지 못하지만요. 전쟁사에도 관심이 많은 입장에선 굉장히 실감나는 일본군의 대전차 전투 묘사에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호평은 여기까지였고 영화 내의 내용 전개에선 이미 상당 부분 문제가 시작된 상태였습니다. 일단 준식이 탈영하려다가 일본군에 대한 공격을 위해 이동하는 소련군의 기갑부대를 발견하고 일본군 병영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는 볼수 있습니다. 일본군에 끌려왔던 조선인 중에 보초 스케줄 때문에 탈영에 참여하지 못하고 일본군 병영에 남아있던 사람이 있었고 준식 때문에 일본군에 끌려온 것을 감안하면 준식이 책임감이 극도로 큰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는데요.
문제는 현역 마라토너였던 준식이 일본군 병영으로 뛰어가는데 중국인 여성 게릴라였던 쉬라이가 준식을 따라와서 준식을 공격하는 소련군 전투기를 단독으로 소총 저격으로 격추시키는 장면이었습니다. 남자 현역 마라토너였던 사람을 고문까지 당해서 몸이 약해져 있던 여자 게릴라가 달리기로 따라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스태미너 차이가 넘사벽일 텐데 말이죠.
게다가 영화에선 쉬라이가 뛰어난 저격수로 묘사되지만 공중에서 지상을 기관총으로 공격해오는 전투기를 소총을 통한 단발 저격으로 격추시키는 장면은 물론 성능이 떨어지는소련 전투기이고 아직 2차 대전 이전이라는 점에서 전투기의 방어력이 약한 전투기일 수 있어 가능할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준식이 쉬라이의 목숨을 준식이 구해주기는 했지만 쉬라이가 목숨 걸고 일본군 병영으로 돌아가는 준식을 구하려고 온 것도 의문나는 점이구요.
그나마 그래도 여기까지는 영화에선 어느 정도 개연성 있는 스토리로 전개되는데 이후에는 심각할 정도로 스토리 전개에 문제가 생깁니다. 타츠오 같은 경우 일본군의 광기 어린 황국 정신이 극한의 시베리아 포로 생활과 이어지는 고난을 거치면서 변화되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준식의 계속되는 마라톤 집착과 끊임없는 착한 병 걸린 역할은 황당하더군요.
시베리아 형무소에서 계속 달리는 준식은 그나마 아직 꿈을 꾸는 준식을 표현했다고 넘어갈 수 있지만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 전혀 준식이 타츠오와 가까워질 이유가 없는데 점점 둘의 우정이 두터워지는데 어떤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가까워집니다. 힘들게 포로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동지 의식을 느낀다? 애초에 타츠오 때문에 억울하게 전쟁터로 끌려온 조선인들과 그들을 자살 공격에 내몰던 일본인들이 우정을 가질 수 있는가?
영화는 이후 스탈린 그라드같은 소련 서부의 소련의 대독일 전투에 투입되는데 여기서 소련군은 큰 피해를 입고 어쩌다보니 준식과 타츠오는 다시 탈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서 광기에 넘쳐 육탄 돌격을 강요하는 소련군 정치 장교의 모습에서 과거 일본군 부대장이던 자신의 모습을 겹쳐 보면서 광기 어린 일본군의 황국 정신에서 탈피해가는 타츠오의 모습의 묘사가 좋더군요. 그리고 탈영한 준식과 타츠오가 우랄 산맥을 넘어 독일로 향하게 되는데 여기서야 어찌되었든 서로를 도울 수 있는 것이 둘 밖에 없으니 서로를 돕는 것이 이해는 갔고요. 하지만 독일군에 포로가 되어 독일군에 편입된 이후에는 시나리오가 완전히 말도 않되는 수준으로 전개되어 기가 차더군요.
독일군이 되어 노르망디에 배치된 타츠오는 준식과 재회하는데 여기서도 준식은 여전히 달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마라톤을 꿈꾸는 준식이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는 묘사더군요. 그나마 워낙 엄청난 일을 겪은 두 사람이어서 이젠 과거의 원한 따위는 잊고 잘 지낼 수는 있다고 보지만 갑작스러운 타츠오와 준식이 소속된 독일군 동방부대원들의 축구 경기는 강제규 감독이 관객에게 감동을 주려고 쓸데 없이 삽입한 장면인데 관객에게 감독의 그런 의도가 너무 뻔히 보여서 도리어 역효과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탈영하려던 타츠오와 준식은 결국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결행하는 연합군의 엄청난 공격에 노출되고 결국 같이 도망가다가 준식이 총을 맞고 준식은 자신이 조선인이니 일본인인 타츠오로 포로가 되는 것보다 조선인으로 포로가 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면서 타츠오에게 자신의 군번줄을 주고 죽게 됩니다. 그리고 타츠오는 조선인 준식으로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리는데 이런 내용 전개가 말이 않되죠.
물론 "마이 웨이"에서 노르망디 전투 묘사는 역시 정말 좋았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각각의 3대 전투 장면인 노몬한 전투, 스탈린 그라드 전투,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정말 잘 묘사되어 전쟁 영화로선 전투신 고증만큼은 어느 정도 감독의 노력을 인정할 수 있고 배우들과 스탭들의 고생 이야기가 공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전투 장면들을 잘 만든다고 해도 결국 영화 내에서 전투 장면만 잘 만들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감독이 고친 시나리오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겁니다.
원래 작가가 쓴 "마이 웨이"의 시나리오에선 착한 준식은 연이은 참혹한 전쟁과 현실을 거치면서 광기에 차오르게 되고 반대로 광기 어린 일본군의 황국 정신에 세뇌되어 있던 타츠오는 처절한 전쟁과 현실을 거치면서 점점 황국 정신을 버리게 됩니다. 근데 영화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준식은 변화가 없이 착한 병 걸린 사람입니다. 영화 개봉 당시 영화평 중에는 심하게는 준식이 보살이라고 조롱하는 평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영화상에서 강제규 감독은 준식과 타츠오의 우정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시나리오를 고쳤는데 둘이 영화에선 전혀 가까워질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원작 시나리오에선 애초에 타츠오가 비록 광기어린 황국 정신에 충만해 있었지만 반대로 자신의 집안에서 하녀로 있던 준식의 여동생을 사랑하고 있었고 준식의 여동생도 타츠오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준식이 알고 있다는 것이 나온다고 합니다.
준식에게 있어 타츠오는 자신을 억울하게 군대로 끌려오게 했고 마라톤으로 경쟁을 벌이던 오랜 라이벌 관계였지만 한편으로 일본인 명문가의 후계자임에도 자신의 집안의 하녀에 불과한 자신의 여동생을 사랑하고 자신의 여동생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연히 애증이 많을 수밖에 없고요. 근데 강제규 감독이 시나리오를 고치면서 이런 부분을 모두 없애고 우정을 강조하는데 우정이 강해질 에피소드는 전혀 없으니 영화가 이상해질 밖에요.
게다가 영화는 막판으로 갈수록 뜬금 없이 조선인 준식이 일본인 타츠오를 용서합니다. 그냥 이유 없는 용서이고 어떤 사과나 이런 것을 받지도 않았는데요. 준식이 자신의 군번줄을 타츠오에게 주어서 조선인으로 행세하라고 하는 것이 압권이고 여기다가 사족으로 런던 올림픽에 자신을 구해준 준식의 이름으로 마라톤에 출전한 타츠오가 등장하는 것은 한국 관객에겐 정말 기분 나쁜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왜 이렇게 스토리 전개가 이상해졌는지는 이해는 갑니다. "마이 웨이"는 무려 3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자된 영화여서 한국에서만 천만 관객 흥행을 거두어도 본전 치기이기 때문에 아시아 지역, 특히 일본과 중국 흥행이 꼭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별 필요도 없는 판빙빙을 굳이 등장시켜 쉬라이라는 중국 관객에게 어필할 캐릭터를 집어넣은 것이고 일본군이 잘못했지만 한국인이 용서한다는 것으로 일본 관객의 거부감을 줄이려고 했던 것이구요.
하지만 영화상에서 일본군은 엄청난 악행을 벌이는데 단지 시대가 그랬다는 애매한 이유를 그것도 직접적으로 내세우지도 않으면서 준식이 타츠오를 그냥 묻지마 용서를 하는 것에 한국 관객이 거부감을 않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 영화는 직접적으로는 굉장히 중립적인 시각으로 만든 것 같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한국인은 무조건 피해자이고 일본인은 무조건 가해자인데 사과도 못 받았는데 마치 일본이 잘못했지만 우리가 대인배이니 용서해주자라는 메시지를 내보내더군요. 어떤 면에선 "마이 웨이"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아주 교묘한 친일 영화입니다.
그리고 강제규 감독이 잘못 판단한 것이 일본인들도 "마이 웨이"를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영화는 어찌되었든 일본의 잘못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데 그냥 이유 없이 용서합니다. 일본인들은 애초에 자신들의 잘못을 직접 인정하기 힘들어 하는데 거기다 대고 일본의 잘못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후 그냥 용서한다는 것은 일본인들에게 있어도 굉장히 찝찝한 느낌이 들테니까요. 당연히 일본 흥행도 실패였구요.
원작 시나리오에선 준식이 조선에서 타츠오를 생각하며 살고 있을 여동생을 위해서 자신의 군번줄을 넘겨준다고 합니다. 즉, 둘이 원수지간이나 다름 없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여동생을 위해서 살아 돌아가 여동생을 행복하게 해주라는 것이지요. 원작 시나리오대로 였다면 분명 훨씬 영화보다 개연성 있는 내용 전개이지요. 여동생의 사랑을 위해 준식이 타츠오를 용서하는 것이니 용서의 개연성도 충분하고요. 영화에선 정말 뜬금 없이 군번줄 넘겨주고 살라고 하고 거기다 타츠오가 일본 마라토너라는 것을 조선인도 모두 알고 있는데 조선 국적으로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결말의 판타지라니!
강제규 감독을 비판하는 쪽에선 결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표절로 영화를 만든다고 비판해서 너무 심한 비판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마이 웨이"를 보고선 그렇게 비판받아도 할 말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영화는 애초에 중국과 한국, 일본이 2차 대전에서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가 하는 역사적 관점이 완전히 틀릴 수 밖에 없음에도 감독이 자기 멋대로 시나리오를 고치다가 흥행까지 말아먹은 희대의 실패작입니다.
강제규 감독이 자기 멋대로 시나리오를 고쳐서 영화를 성공시킬 것이었으면 각 인물들의 사정을 자세하게 보여줄 수 있는 중간중간의 내용을 넣었어야 했는데 이미 "마이 웨이" 상영시간 자체가 137분이나 되어서 내용 추가가 필요했다면 결국 두편의 영화로 만들어야 했을 겁니다. 애초에 강제규 감독이 시나리오를 고치다가 말아먹은 겁니다. 강제규 감독의 시나리오를 보고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가 투자를 철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지요.
강제규 감독은 "마이 웨이"로 능력 부족이 들어나서 앞으로 수십억대의 제작비로 만드는 영화로 다시 성공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블록버스터의 메가폰을 주지는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