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감독의 역사 인식에 관한 문제를 논하지 않더라도, 순수한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 2013년 지브리의 신작 "바람이 분다" 는 그 어떤 지브리 영화보다 처참한 수준입니다.
지금까지의 지브리 영화들은 특정 테마를 가지고 인물들을 그 주제에 결맞게 엮는 것이었다면 - 모노노케 히메와 붉은 돼지 - 이 영화는 그저 주인공 지로의 비행기를 만들기 위한 고군분투, 그리고 그가 엿보이는 일본적 기질에 대한 숭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일본인이 아니면 여기서 말하는 일본적 기질은 아예 이해가 불가능한 수준이거든요. 병든 아내가 죽든말든 방 안에 뉘여놓고 비행기 만들러 나가고. 거진 10년동안 딱 2번 만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솔직한 심정으로 이젠 미야자키가 지금까지 그를 유지했던 벽, 일종의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바람이 분다 에서도 전쟁의 처참함은 여실히 드러나지만, 그것의 책임을 회피하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참(...) 그렇거든요. 과거 붉은 돼지에서 파시스트를 혐오한 끝에 전쟁영웅인 주인공이 돼지가 된 것처럼,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은 어떤 내면적 변화도 찾아볼 수 없이,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이 말살된 톤의 목소리로 비행기를 만들어내는 주인공의 꿈의 묘사는, 분명 일본인이 아닌 타인으로선 이해하기 불가능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재미도 없고 음악도 그저 그렇고 역사인식도 석연찮다, 라고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