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감상글은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하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위노라 라이더, 미셀 파이퍼가 주연한 1993년작인 '순수의 시대'입니다. 영화는 미국의 여류 소설가 이디스 워튼이 1920년에 발표하여 1921년에 여류 소설가로선 처음으로 퓰리처 상을 수상한 유명한 고전소설 순수의 시대를 영화화한 것인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영화화하기 이전에도 1924년과 1934년에 두번이나 영화화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영화는 유명하고 작품성도 인정받는 이디스 워튼의 고전 소설을 훌륭하게 영상화하였는데 남자 주인공을 맡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여자 주인공인 위노라 라이더와 미셀 파이퍼의 연기도 훌륭하고 고증도 잘된 훌륭한 사극 영화였으나 아쉽게도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영화를 감상해본 결과 영화 자체가 절정부가 약하고 잔잔한 감이 있는데 관객에겐 지루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고 보여지더군요.
그러나 1870년대 뉴욕 상류층의 사교계를 배경으로 하는 이디스 워튼의 소설을 워낙 훌륭하게 영화화한 탓에 영화는 1800년대 후반의 미국 동부의 뉴잉글랜드의 상류층이 향유하던 귀족적인 문화를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당시 시대에 관해 부연설명을 하자면 1800년대 중반에서 후반 즈음에 이르면 당시 미국의 경제적 발전이 지속되면서 미국 동부의 뉴잉글랜드 상류층들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귀족이 없는 나라임에도 마치 사회적으로 귀족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귀족같은 여러 보수적인 인습을 지속하고 교양을 보이면서 비슷한 재산 규모를 가진 가문끼리 혼맥을 맺으면서 닫혀진 귀족 사회 같은 모양새를 가져갔지요. 물론 이들은 굉장히 부유하고 교양적이며 보수적인 인습을 고수했지만 신분적으로 귀족은 아니었기에 진짜 귀족인 유럽의 귀족과 혼인하여 유럽의 귀족의 친척이 됨으로서 진짜 귀족으로 대우받으려는 사회적인 경향까지 나타납니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미국의 부유한 상속녀가 유럽의 귀족 가문으로 시집가거나 반대로 몰락한 유럽의 귀족 가문의 영애가 미국의 부유한 상류층으로 시집오는 일이 크게 증가한 것이 이런 사회적인 경향 때문이었습니다. 순수의 시대에 나오는 미셀 파이퍼가 맡은 여주인공 엘렌이 이렇게 미국의 동부 뉴잉글랜드의 부유한 상류층 상속녀로서 유럽 백작 가문으로 시집가서 백작 부인이 된 케이스고 다른 영화지만 영화 타이타닉에서 나오는 여주인공 로즈가 몰락한 영국 귀족 가문의 영애로 부유한 미국의 뉴잉글랜드의 상류층과 약혼하고 결혼하려 타이타닉에 탑승했던 것이죠.
원작 소설인 순수의 시대나 영화 순수의 시대 모두 이런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의 부유한 상류층의 고루한 인습에 답답함을 느끼던 영화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맡은 남자 주인공 뉴랜드가 유럽 백작 가문으로 시집갔던 소꿉친구이며 약혼녀인 위노라 라이더가 맡은 메이의 사촌인 엘렌이 가정 불화로 당시 이혼을 터부시하던 인습에 반항하여 이혼을 감행하고 돌아온 것에 뉴욕 상류층 사교계에 냉대를 당하는 것을 도우려다가 엘렌과 사랑에 빠지고 메이와 결혼을 고민하나 결국 소심했던 뉴랜드가 인습을 깨는 용기를 내지 못하여 사랑을 포기하는 내용입니다.
원작 소설이나 영화 모두 당시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의 사교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귀족이 아니기 때문에 더 귀족다움을 추구하던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사교계의 현실은 책에서 매우 자세하게 묘사되며 영화에선 직접 화면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굉장히 화려하며 당시 미국의 상류층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꼭 볼 필요가 있는 잘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가 이렇게 잘만들어진 것은 미국 역사의 이면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근데 영화에서 위노라 라이더가 정말 엄청난 미모를 자랑하기 때문에 역시 미인이기는 하지만 이혼녀인 미셀 파이퍼가 맡은 엘렌을 뉴랜드가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조금 의아스럽기는 하더군요. 물론 뉴랜드가 원했던 것은 미모의 아내가 아니라 갑갑한 인습에 대한 자유였던 것이 있고 영화에서 엘렌은 이런 인습을 깬 자유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니까 설득력이 아주 없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마틴 스콜세지의 페르소나로 하비 카이텔, 로버트 드 니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꼽을 수 있고 이 영화에선 이 중에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남자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저 네명의 페르소나인 배우 모두 연기력으로 정평이 나있는 배우들인 만큼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영화에서의 연기를 매우 훌륭합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카리스마 있는 역도 믿을 수 없을만치 잘 소화하는 배우인데 이렇게 소심한 남자 주인공도 정말 잘 연기하더군요.
이 영화는 19세기 후반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상류층의 사회를 보여주는 것에 흥미가 있기도 했지만 특히 당시 20대 초반의 위노라 라이더의 미모 때문에도 관심이 갔습니다. 미셀 파이퍼가 외모에서 많이 밀리죠. 하지만 사실 미셀 파이퍼로선 조금 억울할 수도 있는 것이 위노라 라이더보다 13살이나 나이가 많아서 위노라 라이더는 20대 초반인데 미셀 파이퍼는 이미 영화에 출연할 때 30대 중반의 나이였더군요.
어찌되었든 화려한 19세기 후반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상류층 사회의 귀족적인 문화와 20대 초반의 절정의 미모인 위노라 라이더를 보는 것만으로도 볼만한 영화입니다. 단, 영화 자체는 잔잔하게 진행되는 것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