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0년대 미국 뉴욕에서 활동한 록 밴드.
엘비스 프레슬리와 앨런 긴즈버그를 사랑하는 미국 비트 청년 루 리드와 현대 전위 음악을 사랑하는 웨일즈 아방가르드 청년 존 케일을 주축으로 결성되었다.
그 이후로 스털링 모리슨과 모리슨의 친구 여동생 인 모린 터커 (당시로선 드문 여성 드러머였다.)가 루 리드를 따라 들어왔다.
후일 존 케일이 쫓겨나고 덕 율이 들어오지만 그것은 나중 이야기.
당대 비틀즈에 비해 인정받긴 커녕, 제대로 팔리지도 못한 밴드이지만 영향력은 비틀즈 못지 않다 아니 더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헤비 메탈 이외의 다크한 음악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이 밴드의 영향은 만만치 않다.
당시에 그들의 앨범을 산 사람은 모두 밴드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브라이언 이노가 한 바 있다.
직접적으로는 고딕의 창시자라는 말을 많이 듣는듯.
음악은 기본적으로 사이키델릭이지만 60년대 클래식 전위음악과 프리재즈의 영향을 받아 미니멀리즘에 경도된 음악을 했다.
강박증적인 단순 리프와 리듬에 당시 지미 헨드릭스에 의해 자꾸 개발되고 있었던 거친 기타 파열음, 즉 피드백이나 트레몰로 주법등 거친 음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였다.
팝아트의 대가인 앤디 워홀의 적극적인 서포트가 있었던 밴드이기도 하며, 그 유명한 "바나나 커버"가 이들의 1집인 The Velvet Underground & Nico의 커버이다. (아니나 다를까 프로듀서, 앨범 커버 디자인 모두 앤디 워홀) 참고로 이 앨범의 음악적 평가는 이미 전설이 된지 오래.
참고로 박스세트로 재발매된 바나나 커버는 스티커로 된 껍질을 벗길수 있는데 벗기면 마약이 나온다고 했다. 물론 구라고 바나나 껍질을 벗길수 있는 커버인건 사실. 아마 몇몇 인간들이 여기다 실제로 마약을 숨겨 암거래했을거 같긴 하다. 참고로 바나나 속살이 분홍색이어서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거라는 추측도 있었다고. 그러나 정작 앤디 워홀은 1집하고 손 뗐다. (하지만 이들의 명반 행렬은 해체될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저 1집 The Velvet Underground & Nico가 이들의 최고 걸작이라고 하며, 중성적인 목소리를 가진 모델 출신 독일 보컬리스트 니코(도어즈의 짐 모리슨의 애인으로도 유명했던)의 쿨데레한, 감정이 배제된 건조한 목소리가 일품이다.
참고로 니코는 이 앨범을 발표한 뒤 솔로 가수로도 활동하기도 했는데 데뷔 앨범 "Chelsea Girl" 역시 우왕굿이라고 한다. 아직 벨벳에 소속될 당시여서 앨범에 벨벳 언더그라운드 멤버 전원이 참여했다.
그녀의 쿨데레 보컬과 아트 록에 감명받은 이라면 꼭 들어보길.
비록 벨벳과 갈라지긴 했지만, 멤버였던 존 케일하고는 사이가 좋았는지 1988년 사망할때까지 존 케일과 그의 아방가르드 쪽 동료들이 음악 활동을 전폭적으로 밀어줬다...
로파이에 거친 기타 연주, 변태적이고 침울한 가사 ("Heroin", "I"m Wating for the men" 등은 모두 마약 관련 곡이며, "Venus in furs"는 대중음악 사상 처음으로 SM을 다룬 곡이기도 하다. 충격과 공포)로 당대엔 당연히 팔리지 않았으나, 70년대 이후 펑크가 등장하면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90년대 한국 영화 접속에 3집 수록곡 "Pale Blue Eyes"이 실리면서 인지도 상승. 사실 전세계적으로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보컬인 루 리드가 제대로 평가 받기 시작한 것도 이 쯤부터다. 이 비슷한 시기에 영국 영화 트레인스포팅에도 루 리드의 곡인 "Perfect Day"가 실리면서 전격적인 재평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너무 인기가 저조한 나머지 1970년에 해체했으나, 위의 재평가에 힘입어 1990년대 다시 뭉쳤다. 하지만 멤버인 스털링 모리슨의 사망과 존 케일과 루 리드의 반목의 재발로 인해 해체된 상태. 루 리드와 존 케일은 1970년 해체 이후 솔로로 화려한 경력을 구가해나갔다.
벨벳 이전만 해도, 뉴욕에는 별다른 록 밴드가 없었다. 이들이 등장하면서 뉴욕에도 로컬 록 씬이 자라나기 시작했는데,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기존 뉴욕 예술계 영향 때문인지 뉴욕 로컬 록 씬은 미국 타 지역의 로컬 록 씬보다 예술적이고 전위적인 성격이 강하다. 뉴욕 돌즈, 토킹 헤즈, 소닉 유스, 예예예스가 그 예다.
놀랍게도 1960년대 체코 혁명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미국과 달리, 영국과 유럽에서는 이들에게 작지만 의미있는 지지를 보냈으며 특히 보헤미안 전통이 강했던 체코에서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인기는 신앙이라 불릴 정도였다. 허나 당시 억압적인 체코의 정치 상황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을 공개적으로 듣는 것은 금지되었으며 이에 불만이 누적된 지식인들은 끝내 1990년 혁명을 일으키게 됬다. 후일 이 혁명을 벨벳 혁명이라고 부르게 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