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보스
| 추천 (4) | 조회 (453)
2010-04-17 00:05
1961/05/15, 22 (ⓟ 1962) Stereo
Walthamstow Town Hall, London
**재생및 정지 버튼은 마우스 오른쪽을 이용하세요 **
비외탕 [Vieuxtemps, Henry, 1820.2.17~1881.6.6]
벨기에의 바이올린 연주자. 베르비에 출생. 아버지에게 음악의 기초를, 루쿨루와
안젤로 베리오(Angelo Berio)에게 바이올린을, 지몬 제히터(Simon Sechter)와
안톤 라이하(Anton Reicha)에게 작곡을 사사하였다.
1833년부터 유럽 각지와 러시아·미국 등지에서 연주회를 가져 절찬을 받았고,
1846년부터 1852년까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궁정음악 연주가로 있으면서
그곳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871년부터 1873년까지는 브뤼셀음악원의 교수로 있었다.
그는 근대의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자의 한 사람이었으며,
그의 연주법은 근대 프랑스의 바이올린 연주에 큰 영향을 주었다.
비외탕은 모두 7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겼다.
그 가운데 오늘날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곡은 단연코 5번이라고 할 수 있다.
중간 부분에 벨기에의 작곡가 그레트리(Andre Gretry)의
오페라 선율이 사용되고 있어 ‘그레트리’란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한 이 곡은
1862년 초연 당시 베를리오즈로부터
“나에게 이 곡은 지극히 위대한 동시에 새롭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또 “만약 비외탕이 뛰어난 비르투오조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를 위대한 작곡가로서 환호할 수 있을 텐데..라고도 말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곡은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협주곡의 형식을 과감히 탈피해 단악장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과 관현악 부분의
규모와 역할이 더욱 확대되어 독주 바이올린과 관현악의 조화가 돋보이는 점
등에서 남다른 음악적 깊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작곡가로서의 비외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한 베를리오즈의 이 말은 그러나 그만큼 비외탕이 연주가로서
탁월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대 대부분의 비르투오조들이 그러했듯이 비외탕도 자신의 곡들,
그리고 이 5번 협주곡 안에서 역시 탁월한 연주력을 바탕으로 하는
기교적 주법들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우선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다양한 형태의 스타카토의 사용이다.
비외탕은 슬러 스타카토(slur staccato, 또는 flying staccato),
펼친 화음 안에서의 스타카토, 약박에서 스포르잔도로 표현해야 하는 스타카토,
중음의 스타카토 그리고 심지어는 빠른 템포 안에서 포르테로 연주되는
스타카토 등을 선보이고 있으며, 이들은 다양한 아티큘레이션을
함께 포함하는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우선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슬러 스타카토(악보.1)는
활을 현에 붙인 채 활 끝부터 중간 부분까지를 사용해
한 활 안에서 연속되는 여러 음의 스타카토를 계속해야 하는 주법이다.
이는 보잉을 하는 오른손 집게손가락의 순간적인 압력과
손목은 경직된 상태로 두고 앞 팔만을 가지고 연주해야 하는 자세 등
동작과 활의 이동에서 많은 연습과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패시지를 화려하고 경쾌하게 이끄는 매력 또한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