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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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0-22
모처럼 시간이 나서 자기 전에 책을 좀 봤다. 마녀사냥의 역사 어쩌구 하는 책이었는데... (아아... 치매인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_-;;;)
마녀사냥이 성행한 시기는 15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른다. 많은 사람이 종교재판이나 마녀사냥에 의해서 목숨을 잃었다. 마녀들은 흔히 가축을 죽이고, 이웃에개 해를 끼치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마녀들은 수간을 즐겨 행하는데, 흔히 악마적인 동물로 염소나 닭, 돼지 등을 이르는 바 대로, 이들 동물들과의 음행에 관한 흉흉한 소문이 마녀 호칭을 받은 여자들과 따라다녔다.
흔히 마녀와 행위를 나눈 동물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농업이 생계의 주류를 이루는 이 시대에 그러한 전설이나 소문은 자신의 경제적 손해를 분풀이하려는 농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 조금만 이상한 낌새가 자신의 가축에게 일어나도 사람들은 주위에 과부, 나이먹은 여자들을 마녀로써 고발했다.
물론 지역적인 편차가 크다. 어떤 지방에서는 종교재판은 성행해도 마녀사냥은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통상 마녀사냥이 횡횡하는 지역은 그처럼 농민의 이해관계와 종교재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지역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종교재판에 희생되는 사람들은 마녀사냥과는 조금 다른 부류들도 있었으며, 희생되는 이유도 조금씩은 달랐다. 그러나 본질에 있어서는 당시 새로 생겨나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가던 신교에 위기의식을 느끼던 카톨릭 계열의 종교지도자들이 종교적 구심점을 이단처벌이라는 으시시한 행위로 마련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마녀사냥과 동일했다. 따라서, 프로테스탄트와 인접한 카톨릭지역에서 종교재판은 더욱 횡횡했다.
성적인 문란이 마녀를 판결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 이단을 판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당시 만연했던 수도원의 성적인 타락과 종교계의 부패에 대한 반작용의 의미 또한 찾아볼수 있기 때문이다.
혼음난무나 통정을 즐기던 많은 사람들이 마법사, 마녀로 몰려서 처형당했다.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와 실용윤리가 널리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던 18세기까지 이러한 움직임이 계속 되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라 할만하다.
당시 흑사병과 마녀사냥이 횡횡하던 시기에 세익스피어는 비극과 희극에서 속세의 전설, 요정, 기타 많은 신화 이미지를 차용하여 자신의 작품세계를 풍부하게 했다. 어쩌면, 그도 마법사로 의심받았을지 모르는 일이다. 영국에서도 16세기 초까지 마녀사냥은 굉장했었 다고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