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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방 바닥에 오신 분들을 위한 단편소설 하나 올립니다. 보고 가세요.
야설의뒷문 | 추천 (0) | 조회 (2716)

2006-02-13 01:17

 
 
낙방 바닥에 들르시는 분들을 위해 제가 좋아하는 단편 하나를 올립니다.
 
조용히 쉬다 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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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학동네 1996년 겨울/제3권 제3호/통권8호/중단편 소설

 

 

나팔꽃
 
 
심상대
 

나는 애초에 이 글을 쓰기로 작정하면서, 첫 장면의 공간적 배경을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바닷가의 한 호젓한 여관방으로 설정해두고 있었다. 난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나간 갑(岬)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그러니까 건물의 다리가 되는 콘크리트 기둥이 바다 밑바닥에 박혀 있어 평소에는 파도가 창문에까지 흰 포말을 튀겨 올리는 그러한 여관의 한 방에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다. 방 한 켠에는 침대가 놓여 있고, 그리고 두 사람은 유리면처럼 고요한 폭풍 직전의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창가의 테이블에 앉 아 생선회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있다. 여자는 스물두 살, 내가 좋아하는 나이이며 지금은 휴학중이지만 체육교육학과를 다니 는 리듬체조 선수로 여러 종목 가운데에서도 리본체조에 유난히 뛰어나다고 스스로 말하는, 군살이라고는 없는 몸매에 적극적인 성격의 아가씨다. 그리고 그녀는 팬티와 브래지어를 입지 않고서 알몸 위에 단지 청바지와 청조끼만을 입고 있노라고, 뒤이을 이 야기를 위해 나는 미리 그렇게 설정해두었다. 힘주어 만지면 감귤 알갱이처럼 달고 신내를 풍기며 탁탁 터질 것만 같은 그녀에 비하여 남자는 주체할 수 없는 우울증에 빠진 서른아홉 살의 이혼한 남자라야만 하리라, 하고 나는 그의 신분을 대강 그려놓은 채 오늘까지 근 사십 일을 긍긍대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늘 있는 일이지만 나는 요만한 짧은 글 하나를 쓰는 데도 한 달 이상을 허비하며 애를 태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십 일 동안은 연일 새벽까지 술을 마셨고, 그 뒤 이십 일 동안은 방에 틀어박혀 타자기를 바라보면서 연방 한숨을 토해내었고, 죽어버 리자 죽어버리자, 하고 청승을 떨어댔다. 그러다 보니 뭔가 시작이 잘못되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글이 진행되면서 드러 나겠지만 내가 이 글을 쓰려 했던 저간의 이유는,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에 내가 우연히 목격했던 한 여인의 죽음과 깊은 관련 이 있다. 나는 내심 그 죽음을 언젠가는 소설 속에 아름다운 모양으로 그려내리라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강박관념 과 그 강박관념의 작용으로 이루어진 글의 첫 장면이 결국은 문제였던 셈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 바다라는 대상을 통해 서는 조금치의 성욕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바닷가에 앉아 있는 등장인물을 성애의 장면으로 이끌 기분이 아닌 것이다.

나는 이전에 쓴 어떤 글에서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이 얼굴에 튀기자 턱밑까지 시큼해지는 성욕을 느꼈다고 한 남자의 독백을 통해 쓴 적이 있다. 그때에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기실 나는 바다보다는 산, 그것도 가을날의 야산을 바라볼 때 아주 극한 성욕 을 느끼는, 그러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나는 우선 단풍 든 활엽수와 잎을 떨군 덩굴식물이 마른 덤불로 우거져 있는 가 을날의 야산과, 만추의 햇살이 포근히 내려앉은 마른 풀밭 위에 팔을 벌리고 누운 처녀의 나신을 이야기하면서 스스로의 감정을 추스리고 부풀려야 하겠다.

내가 제딴에는 소설가 수업이라 자신하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멤버 노릇을 끝으로 서울로 올라와 전 문대학에 입학한 것은, 그러니까 술 취한 손님 주머니에서 훔친 삼십만원이라는 거금과 멤버 생활을 하며 사귀었던 호스테스 아 가씨들의 배려 덕택이었다. 그때 고려대학교 정문 근처 삼층짜리 낡은 사글세방에 합숙하며 을지로에 있는 룸살롱에 나가고 있던 그 아가씨들은 의탁할 곳 없는 내게 커다란 위안이자 배경이었다. 학교에 다닌다는 죄목으로 그나마 며칠씩 일하던 술집에서는 수시로 쫓겨났고, 고향 친구를 찾아가 하룻밤씩 신세를 지는 데도 지쳐 학교고 뭐고 예술이고 뭐고 한없이 저주스럽기만 할 때, 을씨년스러운 서울에서 오직 나를 반기는 사람은 그 여자들뿐이었다. 책과 옷가지가 든 트렁크는 영등포에 있는 친구의 자취방에 맡겨둔 채 책가방 하나만을 들고 나는 기를 쓰며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영등포의 그 벌집에서 자취를 하며 공장에 다니던 친구 는 지금 삼척시청 문화공보실에 근무하고 있는데, 어쩌다 만나면 술을 마시면서 찬바람이 불어대던 영등포의 인적 없는 밤거리와 담배꽁초를 주우러 다니던 영등포역 대합실과 칠백원짜리 식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배가 터질 만큼 밥을 얻어먹고 얼마간 용돈도 얻고, 그리고 하룻밤 편히 잠자기 위해서 나는 자주 그 아가씨들의 숙소를 찾아 가곤 했다. 그리하여 어느 날은 밥과 술까지 얻어먹고 또 한방에 함께 살고 있던 세 명의 아가씨와 차례로 사랑을 나누는 그런 은혜까지도 입었으니, 지금 어디선가 연락이 온다면 나로서는 누구보다도 지극히 보은해야 할 평생의 은인이 그들이라 하겠다. 그 가운데에서도 정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팔뚝에 있는 덴 자국이 흠이긴 해도 전체적으로 희랍의 대리석 조각상만큼이나 흰 살 결에 육감적인 몸매를 가졌으며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인물이 좋았던 아가씨는, 그 삼층 건물 구석방에서 어떤 놈팽이와 동거하고 있었다. 이쪽 방에 와서 다 끓은 찌개를 덜어갈 때면 다른 아가씨들이 그녀를 놀려대곤 했다.

“이년아, 그렇게 좋아. 응? 뭐가 좋아 그러니?”

그러면 정은이는 깔깔대고 웃어대면서 이렇게 대꾸하곤 했다.

“잘 먹여야지 잠을 잘 잘 게 아니니. 잠을 잘 자고 나야지 밤일도 잘한다. 왜! 왜! 약 오르니?” 나중에 알고 보니 정은이의 놈팽이는 소매치기하는 녀석이었다. 경찰에 잡혀 들어가서 정은이가 혼자 있을 때 함께 술을 마셨는데 그녀가 말했다.

“연습을 해도 안 되었나 봐” 하고 그녀는 태연히 말했다.

“앗 뜨거, 앗 뜨거, 하면서 밤낮 연습을 하더니만. 아이 참 별꼴이야.” 나는 이미 정은이가 놈팽이의 소매치기 수련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세숫대야에 담긴 물을 석유풍로에 데우는 꼴을 보았었다. 그렇게 쩔쩔 끓는 물 속에 백원짜리 니켈 주화를 던 져넣어두고 그걸 꺼내는 연습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십원짜리 동전도 뜨겁다는 말 없이 삭삭 꺼내더라고 정은이는 말하 며, 이번에 달려들어간 건 실력 탓이 아니라 초짜배기 바람잡이와 조직의 전과 때문이라고 하였다.

놈팽이가 아직 구치소에 있을 때 정은이와 나는 토끼라는 별명을 가진 또 한 명의 아가씨와 북한산으로 놀러 갔던 적이 있다. 나나 정은이나 그럴 경황이 아니었겠지만 그건 지금 생각이고 그때 우리는 경황이니 처지니 그런 걸 따질 분별력조차 없었던 철 없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우리였던만치 산은 아무런 재미도 없었다. 산이든 물이든 그런 건 도통 관광이나 감흥의 대상이 아니었 다. 세 사람은 술을 사들고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숲속으로 빠졌다. 그늘진 소나무 숲속을 한참 뚫고 지나가서야 다북솔과 떡갈나무가 널린 바위투성이 산등성이가 나타났고, 우리는 평평한 바위를 골라 그 위에 술판을 차렸다. 발 아래로 단풍 든 연봉 이 겹겹이 펼쳐져 있어서 술을 마시기엔 아주 좋은 자리였다. 그런 경치 탓인지 마셔도 좀처럼 취하지도 않았다.

나는 술을 마시다가 일어나 바위 끝으로 걸어가 아래편 골짜기 속으로 붉고 무거운 성기를 들이밀며 오줌을 누었다. 돌아서서 오줌을 누던 내가 그들에게로 몸을 돌려 오줌발 쏟아지는 성기를 다 보여주자 둘은 깔깔대고 웃으며 건배를 했었다. 그 기억은 아주 또렷하다. 그러다가 무슨 일이었던지 토끼는 무르팍 사이에 얼굴을 묻고 소리없이 출출 울어대기 시작했다. 정은이와 내가 달래고 욕하고 놀려댔지만 그녀는 우리 말은 들은 척도 않고 계속 울기만 했다. 계모와 살고 있는 동생 때문이었던지 짝사랑하던 유부남 때문이었던지 그건 자세한 기억이 없다.

“미친년. 그만 좀 해!”

정은이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나는 우는 여자에 대한 관심은 사실 건성이었고 문제는 턱밑까지 차오른 성욕이었다. 술기운 과, 그리고 가을햇살과 산이 함께 달구어대는 뜨거움 때문에 온몸의 핏줄이 다 터질 지경이었다.

“너만 울 일이 있는 줄 아니?” 하더니, 다시 한 잔을 마시고서는, “나도 울어볼까?” 하고 정은이가 말했다.

“야야, 주접 좀 떨지 말아.”

내가 그렇게 면박을 주자 그녀는 양쪽 볼을 당겨 올리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주먹을 쥐어 내 무릎을 탁 때리면서 말했다.

“가자, 얘. 우리도 울어버리러 가자.”

제 것과 울고 있는 친구의 등산점퍼를 거두어 들고 일어서면서 정은이는 내게 눈웃음을 보냈다. 손을 맞잡고 몇 발짝 숲속으로 들어가자 두 사람이 누울 만한 넓이의 마른 풀밭이 나타났고, 우선은 미친 듯이 서로의 입술로 달려들었다. 무서울 정도였다. 서로의 모든 것을 통째 씹어 먹어버릴 기세로 볼과 턱을 깨물어대며 뜨거운 숨을 귓속으로 불어넣었다. 그때가 계기는 아니었겠 지만 나는 지금도 먹는다는 표현을 아주 생리적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그날의 성욕은 성욕이라기보다는 극도의 허기가 아니었던 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한다.

두 사람은 넘치는 성욕으로 손을 떨며 서둘러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내가 소나무 삭정이에 점퍼를 걸고 돌아서자 어느 틈엔가 그녀는 젖가슴을 드러낸 채 단풍든 상수리나무 곁에 서서 청바지의 지퍼를 내리려 애쓰고 있었다.

“안 돼. 나는 취했나봐” 하고 그녀는 내게 지퍼를 맡겼다.

그녀는 청바지 지퍼가 터질까봐 지퍼 위에 두 개의 옷핀을 꽂아두었는데 그걸 뽑아달라는 주문이었다. 무릎을 꿇고 옷핀을 뽑 는 대신 나는 우선 그녀의 배꼽에 입을 맞추었다.

“간지러워. 얘는, 아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은이는 나의 머리를 세게 틀어쥐어 제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 넘치는 침으로 그녀의 배꼽을 질퍽하게 적 시면서 나는 혀끝으로 오래도록 배꼽 속과 주위를 다 찔러댔다. 그러면서 옷핀 두 개를 차례로 뽑고 지퍼를 내리고, 근육의 수축 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는 둥글고 부드러운 두 쪽의 엉덩이를 꼬집듯이 움켜쥐었다. 팬티는 없었다. 내가 양말까지 다 벗겨주자 그녀는 두 다리를 오그리고 비틀면서 윗몸을 뒤로 젖혀, 마치 서브하는 테니스 선수처럼 둥글게 휘면서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

청명한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한 그러한 그녀의 몸을 나는 풀밭 위에 꿇어앉아 그녀의 종아리를 잡은 채 목을 젖히고 쳐다보았 다. 여자의 무릎 아래 몸을 굽히고서 그 모든 우주의 떨림에 나를 맡기고 있었던 것이다. 광휘의 조화였다. 다른 모든 것은 그만 두더라도, 참으로 그녀의 몸은 자연이 그려내는 진정한 조화를 빛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어 느 누구도 이러한 장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재주는 없을 것이다. 사과처럼 단단하던 젖가슴과 땀에 젖어 미끄럽던 등줄기의 살 결을 두 손으로 만지면서 나는 그때에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본다는 것, 만진다는 것, 냄새 맡는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것이 서 로 뒤엉킨 어우러짐 속에서 몸부림칠 때 우리는 아아, 이게 내가 굴복해야 할 대상이로구나, 세상의 끝이로구나, 나로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이로구나 하는 겸허한 마음에 이르게 되는 모양이다.

내 것과 정은이의 청바지는 키 작은 상수리나무 위에 널려 있었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비치는 풀밭 위에 우리는 아무것도 걸 치지 않은 알몸으로 마주 보고 꿇어앉았다.

“너 잘할 수 있니?” 하고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여위고 굶주린 사슴의 목소리였다.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사슴아, 사슴아, 하고 되뇌었고, 그 러자 나는 내 온몸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는 듯한 기이한 초탈감에 빠져들었다.

“그래, 그래. 아주 죽여줄까?” 하고 내가 바짝 마른 입술로 간신히 말했다.

정은이는 너무나 진지해서 두려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혹시 울어버리지나 않을까, 이대로 까무라쳐버리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나는 두 손으로 그녀의 턱을 감싸들고서 그녀의 눈썹과 속눈썹, 그리고 눈시울을 다 찬찬히 만져주었고, 그러자 그녀는 온몸의 긴장을 서서히 풀면서 펼쳐둔 등산점퍼 위에 반듯이 누웠다. 검은 머리카락을 후광처럼 펼친 채 팔과 다리를 펼쳐 늘어뜨리고 눈 을 감았다. 온몸은 부르르 떨리다가는 가만히 멈췄다.

우리는 교미기를 맞은 산새가 짝짓기를 하듯 그렇게 오랜 동안 아기자기하게 사랑을 하였다. 점퍼 밑에서 버석대는 마른 풀과 가끔씩 살살 불어오는 바람결과, 가을산의 냄새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거칠게 하는 건 격에 맞지 않았다. 정은이의 몸은 아주 잘 익어 있어서 음모의 숲과 그 아래 샘에서는 농익은 다래 맛이 났다. 그리고 나의 성기는 푸른 빛이 돌 만큼 굵고 딱딱해져서 그 녀의 몸에 들어갔다가 돌아나올 때마다 으깨어진 다래의 즙을 줄줄 흘려 점퍼를 다 더럽혔다. 사랑을 마치고 나서는 서로의 냄새 에 전 몸을 바람에 씻어야 했다. 정말 내 몸은 그녀가 음부로 뿜어낸 숭늉 냄새와 비스킷의 짠맛으로 절어 있었고, 반대로 그녀 의 젖가슴 사이에서는 정액의 진한 밤꽃 냄새가 싱그럽게 풍겨나고 있었다.

점퍼에 묻은 송진 때문에 투정을 부리며 돌아오니 토끼는 울음을 그치고 바위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멀리 단풍든 산봉을 바 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그녀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우리를 바라보았고, 성욕을 다 털어버린 듯한 차분함으로, 죽음마저도 싱겁고 부질없기 그지없다는 그런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정은이는 입에 물고 있던 옷핀을 내게 건네주며 자신의 사타구니를 가리켰다.

산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 나는 사실 정은이가 아니라 다른 여자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이야기가 정은이 쪽으로 흘러서 이렇게 되고 말았다. 어쨌든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 같다. 그러므로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여야겠다. 수만 송이 나팔꽃이 피어나 고 스러지는 억겁과 찰나가 공존하는 바다로 가야만 할 때다. 그래서 정은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진짜 쓰고자 했던 이 야기, 정신병을 앓고 있던 친구 누나와 내가 거의 미친개처럼 광희의 성교를 나누었던 파주 근방의 가을산 풍경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하겠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아세톤 여러 병을 사 마시고선 밤새도록 몸부림치다가 죽어버렸다는 누나에 관해서는, 그 누나가 색연필로 그린 분홍색 동그라미만 가득 찬 그림 한 장을 아직도 내가 간직하고 있다는 말을 여기에 적음으 로써 이만 그치겠다.

자아, 이제 오늘의 고백을 시작하여야 하겠다.

지난해 가을 오래 앓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이곳 항구도시의 독신자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나의 근황에 대해 서는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내가 한 처녀와 그녀의 약혼자로부터 결혼식 주례 청탁을 받았 다는 사실과, 그 어처구니없는 경우만큼이나 기막힌 사랑을 경험했다는 내밀한 근황까지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몇 달 전 봄철, 어느 흐린 날 정오가 막 지난 시각이었다. 늦게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 밥을 할까 식당으로 갈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애림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비가 올 것 같아서 술을 마시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며 선생님은 어떠시냐고 그녀가 전화기 저 편에서 물었다. 밖을 내다보니 쥐어짜면 물이 주르륵 흐를 것만 같이 잔뜩 찌푸린 하늘은 금방 비를 뿌릴 듯한 날씨였다.

“드디어 비가 오누나” 하고 내가 말했다.

해안을 따라 늘어선 횟집보다는 운치가 있을 뿐더러, 나로서는 아는 사람의 이목을 피할 수 있어서 그 여관은 그야말로 안성맞 춤이었다. 휴일도 아닌 그런 우중충한 날 대낮에 어린 여자아이와 술을 마시고 있는 내 꼴을 누군가가 본다면 아마 그는, 저 자 식은 저러려고 이혼을 했나 봐, 하고 손가락질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애림이와 그 방에 들었던 건 이미 두 번째였다. 저번 에는 둘이 아니라 애림의 약혼자인 해군 중위가 애림이 곁에 앉아 있었다.

“뭐 하세요, 선생님. 무슨 꽃을 좋아하냐니까?”

애림은 비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저의 생각에 충실하고 그리고 심각한 걸 참지 못하는 성격인데, 그녀 자신의 말대로 던졌다가 떨어질 때 나무막대든 리본자락이든 어디를 잡아도 큰 탈 없이 넘어가는 리본말고는, 이를테면 곤 봉이라든가 후프나 공을 다루는 리듬체조 종목에는 불리할 게 틀림없는 그런 성격이었다.

“비가 와” 하고 내가 다시 말했다.

비는 문득 당연하다는 듯이 부슬부슬 가늘게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난 칸나가 좋아요.”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고, 내게 먼저 물은 건 그녀였다. 그러나 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바라 보았다.

“좀 야하죠?”

나는 그 말뜻을 알지 못했다.

“아니. 뭐가? 뭐가 야해?” 하고 나는 나무젓가락을 모두어 쥐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우리가 앉아 있는 창가 바로 아래에 놓여 있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나팔꽃을 생각하던 중이었다. 야하기는커녕 내 기분은 아찔함, 허전함, 짜릿함 같은, 여러 가지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 사이에서 가늘게 떨며 멈출 자리를 찾고 있었다. 나는 순간 죽어 버릴 수 있다는 생각, 산뜻하게 끝낼 수 있다는 짜릿한 충동 같은 걸 부슬비에 패고 있는 바다의 표면을 내려다보며 느꼈던 것이 다.

“칸나꽃을 보면 뭔가 생각나는 게 없어요?”

애림이라는 여자아이는 스물두 살이었다. 저의 말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여자대학의 체육교육학과를 다니고 있는데 지금은 휴 학중이라 하였다. 현재는 이 도시에 있는 사회복지원에서 유급 봉사원으로 일하고 있고 나와 만난 곳도 거기였다. 나는 그 사회 복지원과 관계 있는 장애인협회에서 장애인들의 프로젝트를 거들어주는 중이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사회복지원 이층에서 열리는 수화강습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녀는 본명이 있음에도 애림이라는 자작의 애칭을 쓰고 있고, 처음 나를 만나던 날도 애림이라 는 이름과 호출기 번호를 내게 적어주었다. 그녀의 성격처럼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호출기 번호를 적어준 건 물론 아니었으리라 여겨진다. 그냥 적어준 거였다.

“선생님은 그런 상상이 안 되세요? 칸나꽃을 보면 여자의 성기 같구나 하는 생각이 안 드세요?” 천연덕스럽게, 소설가라는 사람이 그만한 상상력도 없느냐는 듯이, 학구적이고 진지한 투로 애림은 말했다.

“그런가?” 하고 나는 모듬회 접시 언저리에 놓여 있는 오이쪽을 나무젓가락으로 집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아이가 떨 고 있구나 하고 짐작은 하고도 남았지만, 나는 떨림도 흔들림도 없었다.

그날로부터 한 보름 전쯤에 나는 애림이와 그녀의 연인인 해군 중위를 시내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내가 그 자리에 나간 건 참 싱거운 일이었다. 집으로 전화가 왔고,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는데 친구가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며 꼭 좀 나와주시라고 애림은 전화를 통해 말했다. 물론 거절해야 했지만 어린아이에게 나를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았다. 나는 서른아홉 살이나 먹은 사 람으로 이 지역 사람들의 이목을 경계하지 않을려야 않을 수 없는 그런 처지였다.

“꽃은 참 섹시해요. 다들. 무슨 꽃이든. 선생님은 무슨 꽃을 좋아하세요?” 그러면서 애림은 단숨에 소주잔을 비웠다. 그녀가 멍게 속살을 집은 나무젓가락을 접시전에 걸쳐놓기 전에 대답을 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가만 있다가는 무슨 말이 또 터 져나올지 모른다. 그리고, 모든 꽃들은 다 섹시하다는 그녀의 말은 옳은 말이었다. 꽃은 바기나와 페니스를 함께 가지고 있으니 까 말이다. 꽃은 식물의 성기인 것이다.

“저길 봐. 나팔꽃이야.”

내가 눈으로 창밖의 바다를 가리켰다. 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유리면처럼 반들반들하던 수면이 바야흐로 떨어지는 부슬비에 깨 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는 수만 송이 나팔꽃이 피었다가 스러지고, 스러지고 피어나고, 스러지고 또 피어나는 장관이 펼쳐 지고 있는 중이었다. 애림의 빈 잔에 소주를 따르고 그리고 나팔꽃밭을 바라보면서도, 그러면서도 나는 아주 지독한, 표현하기 곤란한 불쾌하고도 짜증스런 기분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기분이 끝나고 나면 그 끝에는 언제나 말할 수 없는 허탈, 텅 빔, 극도 의 우울, 그리고 울고 싶지도 않은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어서 그 지독한 불쾌감을 더 심하게 삭여야 만 했다. 언젠가 시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 심사하러 갔다가 만난 시를 쓰는 후배는 제딴에는 아주 심각한 연애 얘기를 오래도록 내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이웃에 있는 약사 아가씨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이야긴데 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저만이 미 칠 듯이 좋아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를 맨 처음 만났던 날이면 일 년마다 한 번씩 익명의 러브레터를 보낸다는 사연인데, 어제 그 네번째 편지를 보냈다고 하며 시집 책갈피에서 꺼낸 편지의 복사본을 내ご燭?읽어보라고 내밀었다. 나는 웃으면서 읽고 나면 가슴이 아플까봐 싫다고 거절했다. 그때에도 이러한 기분이 되었다. 미칠 것 같은 불쾌감에 이어 뒤에는 깨끗이 끝낼 수 있다는 느낌이 허탈감과 함께 밀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달맞이꽃이요.”

그 말에도 핑크빛 뉘앙스가 있다는 걸 나는 알아챘다. 달맞이꽃, 하는 순간에 나는 벌써 여자의 성기를 상상했으니까 말이다. 언젠가 나는 사진작가 아가씨와 사랑을 나눈 적이 있었다. 그녀의 성기는 손가락으로 살짝 집어올려 입을 만든 만두꼭지같이 생 겨 있었다. 나는 속으로 웃으며 관계를 했고 끝나고 나서 함께 샤워를 하던 중에 그녀의 성기를 씻어주면서 네 건 꼭 만두꼭지같 이 생겼다고, 나로서는 귀엽다는 뜻으로 말했던 것인데, 그 표현이 불쾌했던 때문인지 말하면서 웃었던 때문인지 그녀는 아주 심 하게 화를 내며 머리에 쓰고 있던 비닐커버를 벗어 거칠게 타일벽으로 내던졌다. 그때에도 그랬고 그 뒤에도 나는, 왜 그때 그녀 에게 만두꼭지 대신 달맞이꽃같이 생겼다고 말해주지 못했을까 여러 번 후회했었다.

애림은 월광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전 우리나라 여인네는 일광욕이나 해수욕보다는 월광욕으로 피부관리를 했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얻어들었는지 고색창연한 배경을 그려가면서 오래도록 말했다.

“너 생리중이냐?” 하고 불쑥 그녀의 말을 자르며 내가 말했다. 아마 보름달에 관한 연상작용과,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불쾌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머, 아뇨. 어머, 아니에요.”

그녀는 조금 놀란 모양이었지만 금세 침착해졌다.

“왜 그러세요?” 하고 웃었다.

“아니, 그런 것 같아서.”

“선생님이 그런 것 같은데요.”

기분은 더욱 나빠져 권총이 있다면 마구 쏴버리고만 싶은 심정이 되었다.

“아니에요. 그리고 선생님, 하나 맞혀보실래요?”

“뭘?”

“내가 이 청바지 안에 무얼 입었는지. 한번 맞혀보세요.” 그건 이미 내가 아는 문제였다. 자신은 생리가 끝나면 며칠 동안 청바지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미 보름 전에 그 방에서 자신의 약혼자라는 중위의 팔에 안긴 채 내게 말 하였던 것이다. 그때 술에 취해서 자신이 그런 말을 했던 걸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그러는지, 어쨌든 나는 그녀가 팬티를 입고 있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애림과 중위는 저희들은 곧 결혼할 거라 하면서, 저희들 결혼식에 나를 주례로 모실 거 라고, 빈말이 아니라는 걸 거듭 강조하며 말하였었다. 나는 물론 새겨듣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굳이 승낙을 강요했다.

“무슨 쓸데없는 소리야, 왜?” 하고 내가 짜증을 냈다.

그러자 중위와 애림이 함께 말했다.

“선생님은 말씀을 잘하시잖아요. 아주 잘하실 거예요.” 그러면서 철없는 중위는 도무지 군인답지 않은, 제 딴에는 무슨 연예 인이라도 된 듯한 말투로 중언부언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사실 코스모스를 좋아한단 말이야” 하고 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어서 애림이 미처 대꾸하기도 전에 연달아 길게 말을 늘어놓았다.

“가을날 인적 드문 오솔길 모퉁이에서 만난 코스모스. 비가 오지 않는다면 물기라고는 없는 그런 마른 땅에 억지로 피어난 손 가락보다 키 낮은 코스모스 한 포기. 단 한 줄기 가지에 단 한 송이의 작은 꽃을 달고 있지. 예쁘지 않아? 당돌함. 치기. 유치. 그런 아름다움. 그 코스모스가 안고 있는 온 우주. 그 우주만한 크기의 슬픔. 아찔함. 잠깐이라는 순간의 쾌락.” 그렇게 말하다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 절망의 근원인 고독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우주가 통째로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 조울증의 또다른 한 증세가 안개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아냐 난 장미를 좋아해. 활짝 핀 분홍색 장미. 예전에 시에다가 이렇게 쓴 적이 있지. 난 시든 분홍색 장미를 좋아한다. 그 속에 들어가 울고 싶다. 장미 꽃잎은 음순을 닮았거든. 다른 꽃도 대개 그렇지만. 핑크빛 음순, 탐스러운 핑크빛 음순의 보들보 들하고 따뜻한 촉감” 하고 나는 씹어뱉듯이 지껄여댔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가 웃고 있는 동안 애림이도 맞장구를 쳤다.

“장미는 사랑의 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해줘야지.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시들지 않으려면 만져주고, 입맞춰주고, 맛보아주고…… 그런데 칸나는 어째서 성기와 같다는 거지?” “그렇지 않으세요?” 하고 그녀는 되물었다. “아주 섹시한데.” “그런가?”

그 체육교육과 학생은 표현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는 아마 칸나꽃 끝부분을 발기한 제 성기의 돌기에 비 유했던 모양이다.

“난 스카이라운지라든가 절벽 끝이라든가 그런 델 가면 휙 뛰어내리고 싶은 그런 기분이 된단 말이야. 바다가 보이면 더 그래 . 깨끗이 끝낼 수 있다는 그런 기분이 가슴 벅차게 밀려와. 예전에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보면 철교를 지나지. 철교를 지날 때, 철교 아래 새파란 물을 내려다볼 때, 그럴 때면 그런, 휙 다이빙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는데 요즘엔 기차를 탈 일이 없으니까 그 런 적은 없지만, 베란다에 나서면 종종 휙 다이빙을 하고 싶어진단 말이야. 그냥 뛰어내리는 것도 아니고, 휙 다이빙.” 말하고 나서 술을 마셨다. 요설이 된 까닭은 혼돈 때문이었으리라 짐작된다. 혼돈이라는 말 그대로 무언지도 알 수 없는 엉킴이었다. 지 금도 나는 감정의 정돈을 위해서는 혼돈의 요설 속을 지나야만 한다.

애림이 같은 요즘 여자아이들은 내숭과 교태 따위는 훌쩍 건너뛰고 대신 상대방의 마음을 열어젖히는 솔직함을 정직하게 드러 내 보인다. 어느 것이 더 자극적이고 효과적인지는 상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이제는 남녀간에 선택하는 쪽이나 선택당하는 쪽, 유혹하는 쪽이나 유혹당하는 쪽이 가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습죠?” 하고 그녀가 말했다.

“뭐가?”

“내가 유혹하는 거.”

“아니.”

“그럼, 좋으세요?”

“그래” 하고서 나는 안경을 벗어 탁자 위에 놓았다.

“당돌하죠?”

애림이 다시 물었다.

“아니.”

“당돌하죠. 남들이 다 나보고 겁이 없다고 그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구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배구선수를 했거든요. 그래서 무서운 걸 몰라요.” 순간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를 말리는 승부의 한 점 한 점을 스스로의 몸으로 겪으며 소녀 시절을 보냈다면, 그녀는 당연히 보통사람보다는 담대할 거라는 짐작이 되었다.

애림은 한쪽 손을 뻗어 내 뺨을 만졌다. 손가락 끝을 나무둥치에 대듯이 어떤 뜻도 감정도 없이 만졌기 때문에 나 역시 아무렇 지도 않았다. 비가 내리기 전 바다의 표면처럼 나는 아주 잔잔한 기분이 되었고, 그건 애림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말하자면 이제는 아무런 말도 필요없었고, 또 무슨 말을 하든 별 감정의 동요가 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런 심리상태를 무어라 하 는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소설가답게 이러한 심리적 상태를 묘사함에 있어서 말이 아니라 상황으로 표현해보자면 나는 두 가지 장면을 여기에 그려 보일 수 있다.

첫번째 장면은 아메리카 서부개척 시대의 어느 시골 소읍에 있는 살롱이 무대다. 먼지를 뒤집어쓴 낯선 총잡이 사나이가 살롱 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카운터 보드에 한쪽 팔을 세운 채 단지 검지만을 세워 위스키 한 잔을 주문한다. 대머리 바텐더가 위스 키 글라스를 내민다. 그럴 때 이층 계단에서 주름치마를 입은 깡마른 창부가 걸어 내려와 사나이에게로 다가간다. 역시 한쪽 팔 을 보드에 세우고 손바닥으로 턱을 괸 채 사나이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리차드? 아니면 존?”

총잡이는 말없이 위스키를 털어넣는다. 창부는 그의 어깨를 털어준다.

“그래, 슬픈 눈을 가진 지미. 어때요. 지미. 메어리에게도 한 잔.” 사나이는 허리에 차고 있던 총열 긴 권총을 천천히 꺼내 장전하여 여자의 이마를 겨눈다. 그러면서도 여자를 바라보지는 않는다. 시선은 여전히 술잔에 담겨 있다. 다시 천천히 손을 움 직여 권총을 허리에 꽂는다. 여자는 입을 다문 채 웃음기 띤 눈으로 남자의 눈을 바라보고만 있다. 남자는 바텐더에게 검지와 장 지를 세워 내밀어 보인다. 바텐더가 건네준 두 잔의 위스키잔을 들고 사나이와 여인은 무표정하게 건배한다. 술값을 보드에 올려 놓고, 그리고 사나이는 여인을 안아들고 발소리를 내며 이층의 계단을 올라간다. 깡마른 창부의 치렁치렁한 머리카락과 주름치마 , 그리고 사나이의 부츠에 달린 박차와 허리 아래로 길게 늘어진 탄띠가 몹시 인상적인 장면이다.

다음 장면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떼지어 풀을 뜯고 있는 영양떼와 그 영양떼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숫사자의 무표정한 눈으 로부터 시작한다. 사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코를 들어 바람의 방향을 재지만 고요만큼이나 바람은 없다. 영양떼와 가까운 거리에 다다르자, 수풀 뒤에 서서 다시 오래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천천히, 조금씩 속도를 더하면서 영양떼를 향해 나아간 다. 영양떼는 우르르 몰려 도망치기 시작하고 사자는 갈기를 출렁이며 질주를 시작한다. 단 하나 그가 노리는 한 마리의 어린 영 양을 향해 사자는 살같이 달린다. 멈춤과 구부러짐에도 온몸의 긴장은 조금도 풀리지 아니하면서, 사자는 몰리고 흩어지며 일렁 이는 영양떼의 물결에 실리어 흘러가듯 필사의 질주를 펼쳐 보인다. 단 하나의 목표, 단 하나의 결과를 향해 그 이외의 존재, 그 이외의 상황에는 관심을 가질 수조차 없다. 영양도 마찬가지다. 사자의 목표가 된 어린 영양 이외에는 단지 흐름일 뿐이다. 필 사적인 건 사자와 어린 영양 둘뿐이다. 드디어 사자와 어린 영양은 어깨를 겨누며 함께 달리게 된다. 사자가 어깨를 기울이고 턱 을 벌려 영양의 목을 움켜잡을 때까지 다른 영양은 초원을 짓밟으며 달리고만 있다. 그리고 몸을 떨던 어린 영양이 초원에 몸을 눕히며 사자의 발 앞에 누울 때 그들은 모두 달리기를 멈추고 먼지가 내려앉은 초원으로 머리를 숙이고서 다시 풀잎을 뜯기 시작 하는 것이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어린 영양의 목에서 흘러나와 풀잎과 흙을 적시는 붉은 피와 고요한 초원, 누운 영양 곁 에 우뚝 선 사자의 무표정한 눈빛, 그리고 다시 평상으로 돌아간 영양떼, 이러한 모든 것이 결국은 이 장면이 말하고자 하는 모 두다.

너스레가 너무 길어진 듯하다. 그러나,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수식어를 앞세우면서 한 가지 더 털어놓을 게 있다. 나도 이 장 면이 자신의 경험이 아니라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었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내 삶이 꿈 이나 허구가 아닌 만큼 이 장면은 생생한 내 삶의 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군대에서 제대한 다음해였으니까 지금으로부터 십삼 년 전의 일이다. 제대복으로 입고 나온 개구리복 바지를 그대로 입고 서 나는 제대 뒤 두 달 동안 네 편의 단편소설을 써서 신춘문예에 응모했는데 그게 다 보기좋게 낙선하고 말았다. 그래서 술 마 실 돈도 벌고 늘 함께 붙어 있던 자살충동도 떼어버릴 겸 오징어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기로 했다. 집에 누워 있으면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죽어버리고 싶어 나일론 끈을 들고 개천가에 선 소나무 아래로 가서 서성이다가 울면서 돌아오는 밤이 연일 계속되던 때 였다. 두타산 아래에 있는 돼지막을 개조해 꾸민 쪽방에 누워 책을 볼라치면, 쌍용양회 동해공장에서 날아온 시멘트 가루가 눈과 콧구멍, 목구멍을 콱 틀어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한없이 캑캑거리곤 했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그다지도 가난했는지 의아해 하겠지만, 그런 게 세상살이의 일면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가난이란 경제현상이라기보다는 운명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여튼 나는 시멘트 냄새가 풀풀 나는 방에 누워 밤새도록 책을 읽었고, 그러다가도 몰아치는 자살충동 때문에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서 숨을 죽이고, 그야말로 죽은 듯이 누워 내 자신이 어쩌나 지켜볼 적이 많이 있었다. 한참 그러고 있노라면 바닥에서 붕 떠오른 내가 천장에 등을 붙인 채 방바닥에 누워 있는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지경에 이른다. 누가 진짜 난지 분간이 가지 않는 그런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밤을 보내다가 해가 뜨면 잠자기 시작했고 문 앞에 석간신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 서 깨어나곤 했다. 무슨 배짱으로 신문 구독을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석간신문 구독료는 할머니가 개울가에 심었던 호박을 따다 판 돈으로 갚았다는 소리를 나중에 들었다. 그때는 돈도 일자리도 친구도 희망도 신념도 없던, 그야말로 나만이 있던 그런 시절이었다. 죽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책만 읽어댔고 나중에는 읽을 책이 없어 할머니 농에 들어 있던 족보를 꺼내 낱낱이 읽기 도 했었다.

그러다가 오징어 채낚시 조업선에 승선 계약을 하고 사무장으로부터 선금을 받았다. 나를 소개해준 친구 삼촌의 지시에 따라 우선은 어구와 침낭과 밑반찬 몇 가지를 사서 배에 실어놓고 나머지로는 진창만창 술을 마셨다. 진창만창이래봤자 거렁뱅이나 다 름없는 뱃사람들과 어울려 실내 포장마차라는 우스꽝스러운 주점에서 막걸리에 콜라를 섞어 마셨는데, 물론 여자도 있었다. 하루 스물네 시간 술에 절어 횡설수설하는 주인 여편네와 다리를 저는 불구의 노처녀와 남편이 오징어배를 타고 나갔다는 젖통이 큰 아낙네가 그들이었다. 남자 쪽은 어땠는가 하면, 주인 여편네의 서방 노릇을 하는 친구의 삼촌과 나, 그리고 뒷날 시내 굴다리 밑에서 깡통을 앞에 놓고 비렁뱅이 노릇을 하던, 당시에는 그나마 멀쩡했던 서른예닐곱 먹은 사내와 주인 여편네의 동생 되는 덩 치만 컸지 어린아이만도 못한 얼뜨기, 그리고 그 중에서 기중 정신이 온전한 서른다섯의 알콜중독자가 우리 패거리였다. 참 지금 생각해보면 만화도 그런 만화가 없었던 듯싶다.

태풍경보 때문에 우리는 근 열흘간이나 시간을 까먹으며 그 술집을 드나들었고, 나중에는 돈이 떨어져 주인 여편네와 그녀의 얼뜨기 동생 눈치만 살피다가 한 잔씩 막걸리를 얻어마시곤 했다. 나로서는 밖에 나가면 친구들이 없는 바는 아니었지만, 이미 친구들은 나를 사람 구실 못 할 놈으로 취급하는 처지였고, 또 나는 당시 잠깐이었지만 이미 의식 자체가 걸인이 다 된 상태였다 . 걸인이나 걸인이 되어보았던 사람이면 이해하겠지만, 막상 걸인이 되고 나면 걸인이 된 자신과 걸인이 아닌 사람의 분별이 희 미해지고, 또 걸인은 걸인 나름대로의 사회와 그 사회를 유지하는 질서가 있는 법이어서, 의식이든 활동이든 우선은 당장 내 앞 에 놓여 있는 그 현실이라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거렁뱅이들 중에서도 나는 아주 유식한 체하면서 이를테 면 대접을 받았던 셈인데, 그래서 덜 거렁뱅이 같은 알콜중독자는 늘 제 곁에 나를 앉히려 했고 내가 고등학교까지 나왔고, 또 병장으로 군대에서 제대했다는 사실을 한 자리에서도 여러 번 강조하곤 했다. 사실 그들 가운데에서 안경을 쓴 사람은 나밖에 없 었으므로 내 자신도 그런 대우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고자 하면 한없이 쓰겠지만, 그 실내 포장마차에서 만났던 하루살이 같던 사람들, 더욱이 여자들과 그 여인들의 짐승 같았던 몸매와 교성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적겠다.

거렁뱅이 노릇에도 지칠 대로 지쳤고, 막걸리에 취해 뱃사람들과 겨울항구를 서성댄 지도 여러 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 전날 밤은 어쩐지 갑자기 바다가 잔잔해져 나는 알콜중독자를 따라 그가 아는 사람의 배라고 하는 뎅구리배에 올라 기관실에서 잠을 잤다. 어선 출입통제소를 지키는 해경의 눈을 피해 입항부두 쪽에서 배에 올라 엮여 있는 배를 건너고 건너 항구 한가운데 떠 있는 배 안에서 잠을 잤고, 다음날 눈을 뜨니 한낮이었다. 한낮이었지만 부슬비가 내리는 겨울날이라 부두는 텅 비어 인적이 라고는 없었다. 알콜중독자는 더듬거리며 우유를 사 오겠다고 일어섰고, 내게는 낚시를 하라고 이르면서 갑판에 서 있던 낚싯대 를 건네주었다.

“우유말고 베지밀을 사는 게 좋지요. 빵도 사고” 하고 내가 말했다.

내가 이 말을 기억하는 까닭은 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해놓고서도 낚싯대를 드리우고 뱃전에 앉아서 곱씹었던 자신의 처지와 비 굴에 대한 스스로의 냉소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도 베지밀이라는 말을 뼈저린 부끄러움의 대명사로 여기고 있다.

허기와 숙취로 인해 쓰리다 못해 찢는 듯이 아팠다. 어제 쓰다 갑판에 버려져 있던 새우를 낚싯바늘에 끼우면서도 웬만하면 몇 마리 집어먹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허기보다는 복통 때문이었다. 먹든가 토하든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먹을 것도 토해낼 것도 없었다. 그런 경우 고통을 참는 방법은 고통에 대한 무관심이다. 나는 오히려 빙그레 웃으며 부슬비 흩뿌리는 뱃전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망연히 수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부슬비긴 하지만 연일 비가 내렸는데도 어쩐지 그날의 바다는 거울처럼 맑고 잔잔했으며, 그 위로 가는 빗줄기가 소리없이 쏟 아져내려 바다는 파문의 꽃으로 가득 찬 거대한 꽃밭이었다. 너무 복통에 몰두해 있었던지 처음에는 아아, 바다로 들어가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내게 말하였다. 그녀는 이미 내가 그렇게 알아보기 훨씬 전부터 줄줄이 엮여 있는 작은 고기잡이배의 뱃전을 건너 항구 한가운데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녀가 맨 끝에 있는 배에 다다를 때까지 그러니까 나는 단지 눈으로만 바라보았을 뿐, 또다른 어떠한 판단이나 분별은 마련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아, 하고 느꼈을 때 그녀는 이미 뱃전으로부터 몸을 던져 지척에 있는 바다로 살짝 들어가고 만 뒤였다. 그런데도 나는 낚싯대를 잡고 가만히 앉아서는 그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녀가 떨어질 때 파문은 일었으나 내 낚시의 찌에까지는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카키색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었고 손수건인 지 스카프인지 천조각 한 장을 손에 들고 있었는데, 그러나 떨어지는 순간에 모든 게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뛰어내린 배 는 일렁이는 물결을 타고 출렁출렁 흔들렸지만 내가 앉아 있는 배에까지 일렁임은 오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보지 못했는지 아니 면 보아도 나처럼 의식 없이 보았는지 그건 알 수 없다.

조금 있다가 그녀가 수면에 나타났다. 그때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듯 생각되었지만 아마 잠깐 사이였을 것이다. 물 밖으 로 나온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무언가 잡으려는 손짓이었다. 배는 여자의 손 가까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녀가 일으키는 파문의 파장에 밀려 건듯건듯 놀리듯이 허우적대는 그녀의 손에서 비켜났다. 물에 젖은 머리통은 아주 작아서 나로서는 머리보다는 휘저 어대는 손과 흰 팔뚝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소리는 없었다. 물론 내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던 이유와 그녀가 아무런 소리 도 내지 않았던 이유는 달랐을 것이다. 멀었기 때문에 그녀가 휘저어 부수는 물소리도 나는 듣지 못했다. 찌를 보듯이 바라보는 사이에 그녀는 다시 수면 아래로 사라졌고, 이번에는 하얀 팔목만이 잠깐 나왔다가 들어가더니 그 뒤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일렁일렁하면서 저편의 배들은 나로부터 더 멀어져 갔고, 아무리 기다려도 여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내 찌가 갑자기 쑥 수면 아래로 사라져버렸고 나는 벌떡 일어서며 거칠게 낚시대를 채쳤다. 무거웠다. 그리고 그 놈은 온몸을 감싼 흰 비늘을 뻔 쩍이며 수면 가까이 물밑에서 긴 곡선을 그리며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아주 커다랗고 잘생긴 맹이 놈이었다.

다시 멀리 낚시를 던져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바다 위에서는 수만 송이 나팔꽃이 피었다가 스러지고, 스러지고는 피어나고 있었다. 내 몸에서도 부슬비가 쉼없이 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쪽으로 밀려갔던 배가 물의 흐름을 타고 다시 내 가까이로 다 가오고 있었고, 피었다가 스러지고 피었다가 스러지는 그 속절없는 꽃밭 한가운데를 향해 갈매기 두 마리가 아무런 움직임도 없 이, 마치 나무로 만든 새같이 천천히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들은, 어쩌면 조류의 흐름에 실렸었는지도 모르지만, 어 쨌든 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내 복통은 사라졌고, 그리고 의식은 또렷해졌다. 갈매기를 뒤따라 꽃 무늬 손수건이 천천히 흘러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다다. 그날 저녁 무렵 선주가 쓴 뇌물 덕택으로 우리 배는 다른 또 한 척의 배와 선단을 지어 북지나해를 향해 출항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 밤 용기포 앞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났고, 스물일곱 명이 타고 있던 배 한 척이 소리없이 사라졌다. 내가 타 고 있던 배는 보름 동안 동해를 헤매며 실종된 배를 수색하다가 짧은 항해를 마치고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배에서 내려 나중에 들은 바로는 항구에 떠오른 여자의 시신은 폭풍의 밤 동안 날뛰는 배와 배 사이에서 깨어지고 터져 머리통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고 한다. 그리고 더이상의 내막은 아는 사람도 없었고 나도 알아보지 못했다.

마른 체격의 처녀들이 다 그렇듯이 애림의 젖가슴도 둥글게 드러나 보이지는 않았지만 손바닥으로 움켜쥐어 만지자 아주 부드 럽고 풍부했다. 그리고 속으로 들어가 있던 젖꼭지도 입술을 대고 부벼주자 금방 튀어나왔다. 설익은 앵두알처럼 야물고 연분홍 빛을 띤 젖꼭지였다.

“내일까지 이렇게……” 그녀는 튀어나온 저의 젖꼭지를 만졌다. “튀어나와 있을 거야.” 이미 서너 번씩이나, 으깨어지는 감귤 알갱이처럼 팍팍 터져버리는 성교를 마친 다음이었다. 얼마 전 약혼자와 누웠던 침대에서, 주례를 부탁했던 내게 몸을 맡기 고서, 한쪽 손으로는 저의 젖꼭지를 주무르고 다른 손으로는 남자의 성기를 틀어쥐고 누운 채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한없 이 평화 속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담담한 심정으로 결혼이라는 걸 생각해보았다. 결혼이라는, 인간이 만든 이 극한 의 구조적 폭력에 대해서, 이제는 미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만 같다는, 그리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삶에 찌 들지 않은, 삶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뭐 그런 수식어가 생각났다. 얼굴로 애림의 어깨를 부빌 때였지만 애림을 위한 수식어는 물 론 아니였다. 애림이보다는 나이 든 여자라고 나는 생각했다.

“선생님, 다음엔 엎드려서 하겠어요” 하고 애림이 말했다.

우리는 이미 성 지침서에 소개된 거의 모든 체위를 거친 다음이었다. 체위가 문제가 아니라 애림은 어린아이처럼 무언가 자꾸 지껄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엔……”

떠드는 여자는 싫지만 애림은 왠지 밉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비를 맞으면서…… 그리고 그 다음엔 변기에 앉아서……그리고 그 다음엔 구두를 신고 하겠어요. 응?” 군대에 가기 전에 해수욕장에서 만났던, 서양 인형 같은 얼굴에 작고 가벼운 몸을 가진 계집아이가 생각난다. 삼십 킬로그램쯤 될까, 깃 털처럼 가벼운 몸무게가 나의 성욕을 자극했던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그 계집아이는 교성을 지를 때를 빼고는 계속 입을 열어 짜증이 날 정도로 떠들어댔었다. 짜증을 내지 못하고 나도 따라 응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녀가 육손이었던 때문이다. 신체적 결함을 요설로 감추려는 애처로운 심사였겠지만, 나로서는 그녀의 말솜씨보다는 약지에 매달린 또하나의 작은 손가락이 훨씬 아름다워 보였고 자극적이었다. 그 여름나비는 지금쯤 어디서 날아다니고 있을까? 조그마한 덧손가락을 가진 예쁜 딸을 낳 았을까? 지금도 떠들면서 성교를 하는가? 하하, 그리워진다.

애림의 성기는 그녀의 몸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붉었으나 칸나꽃보다는 연했다. 역시 칸나꽃 끝 부분 같은 돌기가 솟아 있었고, 그리고 연홍빛 음순은 짐작보다 풍부하게 겹겹이 포개져 있었다. 나만이 아니라 그녀의 꽃 이야 기를 듣게 될 수많은 남자들은 그녀의 꽃 앞에 와서는 모자를 벗고 저고리와 바지를 벗고, 그리고는 머리를 숙이고서 그 꽃을 보 고, 만지고, 냄새 맡고, 그리고 먹으리라. 애림이와 내가 이 세상에서 종적 없이 사라지고 난 다음, 그 다음에도 나라는 그 누군 가는 애림이라는 애칭을 가진 여자의 꽃 앞에 무릎을 꿇고서 그 꽃잎이 버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리라. 나는 평화 속에서 무료를 달래듯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하기 전, 침대에 엎드려 엉덩이를 들면서 그녀가 물었다.

“좋으세요?”

“넌?” 하고 내가 되물었다.

“그래요. 아주 아주 좋아요.”

그리고는 얼굴을 내 쪽으로 틀었다.

“집에 그냥 있었으면 죽고 싶었을걸. 전화하길 잘했어요. 집에 그냥 있으면 뭐해. 지나가면 오늘은 그만인걸. 다시는 오지 않 을 텐데.” 그러면서 낮은 목소리로, 삶에 대한 어떠한 욕심도 원한도 없는 나이 든 여자처럼 제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 어제 생리가 끝났어요. 깨끗하게 씻고 나서 마스터베이션을 했어요. 난 늘 그래요. 그러고 나면 기분도 몸도 깨끗해지거든요.” 나는 신혼의 남편이 된 기분으로 애림의 이야기를 신부의 내밀한 고백처럼 듣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제는 그렇지 않아서,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아빠를 유혹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고…… 어떤 땐, 어떤 때 꿈 에는 아빠와 그러기도 해요” 하고는 도로 얼굴을 돌렸다.

“그래서 전활 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선생님. 미워하지 말고. ” 단단함, 버림, 가벼움 같은 느낌이 들었다. 허공에서 떠돌던 몸을 단정하게 땅으로 내려놓으려는 뜀틀 체조선수처럼 애림과 나는 착지라는 고난도의 마지막 묘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텔레비전을 통해 아메리카의 어떤 마을에서 벌이는 침대달리기 시합을 본 적이 있다. 저마다 각각으로 예쁘게 꾸 민 침대 위에 잠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누워 있고, 그 침대를 달려 순서의 우열을 가리는 놀이였다. 그렇다. 나이를 먹으면 서 우리는 모두 삶의 희열, 쾌락의 정점, 우리가 우리 자신을 던져 얻어낼 만한 가치 같은 것이 결국은 어린 시절 초등학교 운동 장에서 벌이던 줄다리기 직전의 흥분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마는 것이다.

애림은 줄곧 흐느꼈다. 내 뿌리가 꽃잎을 열면서 자신의 몸속으로 뻗어들어갈 때마다 엉덩이를 들어 흔들면서, 침대보를 틀어 쥐면서, 파묻은 얼굴을 흔들면서, 돌풍에 휘날리는 한 떨기 나무처럼 산지사방을 향해 떨어대다가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오래오 래 흐느꼈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걸어가서는 창문을 열어젖혔다. 우중의 냉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머리카락을 털더니 창턱에 두 팔을 걸치고, 한쪽 다리를 의자 위에 올리고서는 나를 돌아보았다.

말없이, 천천히 한쪽 손만을 뻗어, 그녀는 나를 불렀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녀에게로 걸어가면서 아아, 아름답구나, 하고 속으로 내게 말하였다. ‘아름답다’ 라는 말의 어원은 ‘나답다’ 라고 한다. 참나무다운 참나무, 도마뱀다운 도마뱀처럼 애림 은 그 누구도 아닌 애림이다운 애림이었다. 눈물은 그녀의 볼을 따라 빗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람에 날린 부슬비는 그녀의 어깨 위로 쉼없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애림의 몸은 아직 뜨거웠다. 나는 그녀의 등에 배를 붙이고 서서 손을 뻗어 젖가슴과 배를 만졌다. 그리고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나처럼 망연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억만 송이 나팔꽃이 피어나고 스러지고 다시 피어나고 있었고 그 곁에서 나는 눈물에 젖은 한 여인의 알몸을 부둥켜안은 채 다시 오래도록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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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학동네 1996년 겨울/제3권 제3호/통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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