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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와100원^^
milk | 추천 (0) | 조회 (468)

1999-11-01

배가 고프다. 시간은 벌써 오후 6시가 되어가는데 아침부터 먹은거라고
는 집에서 급히 끓여먹고온 맛없는 만두국이 전부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차를 끌고 물건을 사러 동대문으로 향했다. 평화
시장 건너편 고가밑으로 몰고갔는데 갑자기 뇨기가 느껴진다. 옆 동료에게
견인되지 않도록 차를 봐달라고 하고는 정차시켜놓고 부랴부랴 화장실을
찾아뛰었다. 다행하게도 100m 쯤 되는곳에 지하도가 있다. 일을 마치고
다시 차로 뛰다가 뭐 간단히 먹을것 없을까 찾는 눈안에 토스트를 파는
포장마차가 들어온다.

토스트라....일년에 한두번 사먹어 볼까말까한 음식이다. 어느 가정에
서는 자주 먹을지 몰라도 우리집은 거의 먹는 일이 없다. 그 흔한 토스트기
도 없고 식빵 사다 먹는일도 없다. 어릴때 겨울만 되면 밭에 비닐깔아서
만든 허술한 스케이트장안에서 맛있게 먹던 기억은 있었지만 나이 들어서는
그다지 생각도 안하는 음식이다. 가격이 얼만지도 모른다. 대충 한개 천원
쯤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줌마 토스트 두개 주세요!"

차안에서기다리고 있을 동료를 생각해서 두개를 사려고 했다.
어? 그런데 아줌마가 아닌 할머니다.

"설탕 넣어드릴까요?"

당신 나이의 삼분의 일이나 먹었을까 말까한 새파랗게 젊은 내게 존대말
로 물어오신다. 잠시 그런 생각하느라 대답할 시간을 놓쳤다. 안넣었으면
했지만 호떡에 들어가는 황색의 설탕이 따뜻한 식빵위에 뿌려진다.
할머니가 찢긴 마분지 조각에 토스트를 싸서 주신다. 한개만 주시네...

"어? 두개인데요."

"두개예요?"

한개를 더 팔게되었다는 작은 기쁨의 표시일까? 생기없던 얼굴 가운데서
눈빛이 반짝이신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신다.

"어 뜨거."

"아. 그럼 하나는 싸서 드릴까요?"

다시 만들어져 있는 토스트가 데워지고 설탕이 뿌려진다. 그리고 그것이
은색의 알루미늄 호일로 포장되어진다. 토스트 하나 팔면 얼마 남을까?
하는쪽에 생각이 미친다. 포장매체가 마분지 조각에서 호일로 바뀌었다.
내쪽에서 나도 알지못하는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만들어져있는 토스트는
모두 세개였다.

"그냥 나머지 이거 하나도 더 주세요."

처음 받은 하나를 우걱우걱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이번에도 할머니의
미소가 보였다. 그 미소는 아까보다 더 컸다. 나도 이상스레 미안했던
마음이 줄어들었다. 호일에 싸인 토스트 두개를 잠바주머니에 넣고
얼마인가 물어보지도 않고 지갑에서 만원짜리 지폐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평소 잘 말하던 "얼마예요?" 는 이번엔 쓰이지 않았다. 할머니가 지폐를
받으셨다. 허리춤에서 거스름돈을 꺼내신다.

'토스트가 한개 얼마일까? 한 천원쯤하겠지? 그 이상이면 비싸고....'

생각이 끝났을무렵 할머니가 거스름돈을 주셨다. 주시면서 가장 큰
미소를 지으신다. 내가 그 할머니로부터 보아온 미소중 가장 큰 미소다.
난 그 할머니를알게된지 불과 5분도 되지 않았다.

세어보지 않고 돈을 받고는 "많이 파세요." 하면서 뛰었다. 토스트를
먹으면서 돈을 세어보았다. 팔천원이다!

아하! 난 할머니의 미소의 의미를 깨달았다. 토스트 세개에 2천원이라...
분명 그 토스트는 한개에 667원짜리가 아닐것이다. 그리고 과일처럼
'세개 이천원' 씩 팔리도 없다. 세개를 팔아줬으니 100원을 깍아주겠다
하면서 지으신 미소가 틀림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난 다시 뭔가
알수없는 미안하고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토스트는 분명 한개 700원
이리라..

100원. 이천원어치의 토스트를 팔아서 얼마의 이문이 남을까 생각했을때
할머니가 '깍아주신' 100원은 적은돈이 아니다. 친구들하고 포커칠때는
몇십만원도 우습게 생각하는데...또 주머니에서 100원이 아닌 만원짜리
하나가 없어져도 모르는 나한테 (나뿐만이 아니겠지만...) 100원이 주는
자잘한 감동은 무언가를 느껴주게 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한
실체를 모르겠다. 아마도 그 100원은 할머니가 내게 베풀수 있는 최상의
금액이었을것이나 할머니가 보여주신 미소는 돈으로 환산할수 없는 가치
가 있었다고 (적어도 내게는...) 생각되었다.

차로 왔다. 토스트를 꺼내서 동료에게 주었다. 동료가 물건 사러 시장을
돌동안 나는 차안에서 차를 지키고 있어야했다. 차문을 열고 나가려는
동료에게 묻는다.

"토스트 한개 얼마인줄 알아요?"

"글쎄요? 한개 천원쯤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이따 오실때 조오기 포장마차에서 세개만 사갖고 오세요."

"그러죠."

차문이 닫힌다. 나는 뛰어가는 동료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도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담긴 미소를 보게될지도 모른다. 아니...
꼭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