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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에 대한 기억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차츰..옅어지게 되겠지요.
atlas | 추천 (54) | 조회 (543)

2019-11-16 22:53

지난 수요일 새벽 5시10분..

깊은 잠결속을 헤매고 있는 순간에 침대 바로옆에 있는 테이블위의 핸드폰에서 갑자기 벨이 울린다.

아내의 핸드폰이다.

 

순간적으로 화면을 보니.. 새언니의 전화..

불연듯 불안한 느낌이..

장인어른이 갑자기 위독하다는 긴급한 전화다..

 

지난 20일전에 요양병원으로 옮겨진 장인어른이 우리들의 우려와 다르게..눈동자의 촛점도 또렷해지고 정신도 좋아지는 모습이라.

걱정하는것보다는 괜찮아서..올해는 잘 지내리라 생각핬고..이틀전에 갔을때도..나랑 잠시나마 대화까지도 했었다..

 

그런데..갑자기 상태가 안좋진다는 소리에..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가려는데..

다시 전화가 올린다.. 5시20분에 별세하였다는 연락이다..

 

결국.. 우리와의 좋은 추억을 남기고 결코 만날수 없는곳으로 떠나신 장인..

비록..남들보다 오래 사셨고.. 세명의 자식들을 나름대로 훌륭하고 키우고 떠난 당신..

 

7남2녀의 맏이로서.. 평생 백수로 살면서 가정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되던 아버지를 대신해서..많은 동생들과 가족들을 책임지던 분이..

그동안의 고생과 수고를 통해서 막내동생까지 결혼시킬정도로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625전쟁때..학도군으로 지원해서 20여년 군생활 후.. 당시 군에서 추천해주었던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서는 동생들을 보살폈던 분이다.(물론..처남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다..)

 

아내와 만나서 결혼 약속후 처음 찾아간 처가집에서 뵈었을때..처음 뵌 장인.  당시 연세에 비해서 키가 훤칠하셨고.

약간 마른듯하면서도 순박해 보였던 분이었는데. 결혼 후 가끔씩 처가집에 갔을때..무뚝뚝하지만..항상 반갑게 맞이해주었던 분이었는데..

 

나이 70넘어서 배운 붓글씨에 심취하셔서..훌륭한 작품을 보여주었던 분이었고..

80이 넘어서도 항상 학습과 배움에 목말라서..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던 분이었는데..

 

어느새..그런 분이 세월의 흐름을 무시하지 못하고.. 결국..다시 돌아오지 못할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렇게 새벽에 갑작스레 별세 후..이어진 긴 3일의 장례가 어제 끝났습니다.

장례식장에 오시는 조문객들과  지인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고.

다행히..전쟁시 많은 공적을 세워서 훈장까지 받으신 국군유공자였기에.. 대전 현충원에 묻히셨습니다.

 

처음으로 가본 대전현충원..어마어마한 크기와 그곳에 묻혀있는 수많은 혼령들을 보고서..이런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느껴보았습니다.

 

정말로 그분들에게 머리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루지난 오늘. 혼자서 장인어른에 대한 추억과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가난한 집안이었기에..세명의 자식들이 좋은 학업성적을 가지고도..결국 저렴한 국립대학으로 입학하도록 자식들을 설득하여..

세명의 자식모두 남들보다 나은 직업환경을 가진 사람으로서 만들었고.. 8명의 동생들도 모두 이제는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기에..

정말 어렵고 힘든 인생을 살면서..본인 한사람의 희생으로서도 이렇게 훌륭한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다시한번 고개 숙여

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딱 10년만에 가까운 분이 생을 달리하는것을 보고..

비록 이것도 인생의 한 과정이기에..당연한 순리 이겠지만.. 한동안 슬픔과 먹먹함은 존재하겠네요.

 

이미 떠나신분은 가신분이기에.. 조금씩 그분에 대한 추억과 기억도 차츰. 잊혀지면서 우리는 다시 우리의 삶을 이어 가겠지요..

이렇게 우리들도 인생의 한 과정과 시간을 흐르면서 한살 한살 나이먹어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는것이겠지요..

 

슬프면서도 잊혀지지 않을 2019년 11월 한주를 오늘도 지나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