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ID/패스
낙서 유머 성인유머 음악 PC 영화감상
게임 성지식 러브레터 요리 재태크 야문FAQ  
김장 이야기
lurkerman | 추천 (48) | 조회 (734)

2020-12-02 16:20

자난 주말을 포함한 3일은 일년 중 가장 큰 먹을거리인 김장을 담그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예전처럼 한접을 하는 것도 아닌, 겨우 25포기가 전부이지만 원래 서울식 김치라는게 잔손이 정말 많이 가지요.

 

오만가지 채소를를 다듬는 것도 일인데 또 다양한 김치를 담가야 하기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3일내내 

노동력을 투사해야 하는 피곤한 일이되고 맙니다.

 

김치종류도 그렇습니다. 

 

당장 먹기에 알맞은 보(쌈)김치와 백김치, 동치미를 기본으로 하되, 짠무와 섞박지, 총각김치를 필두로 한

무김치 몇개와 배추김치 역시 설 전에 먹을 김치와 설 이후에 먹을 김치 2종류를 담가야 하니 비록 양은 줄었어도 

가지수는 그대로라 준비하는 과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여기에 그간 기다려온 굴젓과 명란젓이 추가되니 3일도 버거운 일정이긴 합니다.

 

그나마 큰 힘이 되어주던 노예 2호기가 군대에 묶여 있기에 올해는 유난히 허리가 아팠는데

이러니저러니해도 노예2호기의 노고가 대단했음을 간접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리운 노예2호기가 되겠군요.

.

.

 

김장의 과정은 5월부터 이미 시작됩니다.

황새기젓을 담그고, 새우젓을 담가야 하는 과정부터 이미 김장은 시작된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나마 황새기젓은 질좋은 황새기와 질좋은 천일염만 있음 정말 쉽습니다.(그냥 소금만 퍼부으면 끝~~~)

문제는 새우젓이라 몇해 전부턴 광천토굴로 대체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토굴도 다같은 토굴이 아닌지라 우유빛깔 나는 토굴을 구하려 눈을 시퍼렇게 떠야 하지만 담그는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일도 아닙니다.

역시 돈이 최고인겁니다.

.

.

 

이게 끝나면 천일염을 구하는 여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5월 중순 즈음해서 송화가루가 날리면 평소 찾던 염전을 찾아 천일염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일찍부터 현장을 찾지 않아도 되겠으나 이 여정을 빼놓을 순 없습니다.

찾는 길에 맛보는 장어구이는 그해 김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몸보신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일년 중 유일하게 맛보는 장어구이가 되겠습니다)

.

.

 

이렇게 시작된 김장 준비를 까무룩하게 잊었다 싶을 즈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이때는 질좋은 태양초를 구해야 하는 정말 중요한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건조기를 통한 태양초가 아닌 진짜 태양초를 찾아야 하기 때문인데

상질의 고추가루가 김장 자체를 지배하기 때문에라도 부모님부터 잔뜩 벼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되겠습니다.

.

.

 

진짜 태양초를 구했다 해도 이게 다가 아닙니다.

 

그래도 2 ~ 3일은 바짝 말려 주어야 하고, 그 많은 고추를 일일이 닦아 주어야 하며,

독한 마음으로 배를 갈라 고추씨를 빠짐없이 분리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과정을 겪어야만 정말 선홍빛으로 맑게 빛나는 김장김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탁하디 탁한 시뻘건 색의 김장김치가 아닌 제대로된 서울식 김치는 맑디맑은 선홍빛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건조기(화구) + 고추씨가 포함된 고춧가루는 검붉은 색에 가깝기에 어쩌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정갈함을 기본으로 하는 서울식 김치는 담그는 과정이 동일해도 빛깔에 따라 대접을 달리 받곤 했습니다)

.

.

 

배추를 선별하는 과정도 포인트입니다.

아무거나 쓰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주말 농장으로 자급자족? 경을 칠 노릇입니다.

 

배추는 무조건 고랭지 배추여야만 합니다.

그것도 불암 3호 배추여야만 합니다.

.

.

 

일단 고랭지 배추는 비쌉니다. 

배추의 질이 월등히 좋아서가 아닌 물류비 + 인건비 + 기타 잡비(비료비 등)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비싸기 때문입니다.

 

배추 재배량 6% 수준의 고랭지 배추가 얼마나 맛있을까 싶습니다만,

그래도 일교차에 따른 생육과정에서 발생하는 특유의 아삭함과 높아지는 당도 그리고 수분이 부쩍 주는 현상이

불암 3호 배추와 만났을 때의 그 시너지 효과가 배가 되어 "조선배추"와 흡사해지니 이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부친을 위해서라도 필수 선택인 셈입니다.

.

.

 

해남배추도 당연히 맛있습니다.

저 역시 한동안 해남배추를 고집했으나 여긴 대부분 휘파람(혹은 휘파람골드 등) 배추이기 때문에

그 식감이 미묘하게 다르며 또 묵을 수록 달라집니다.

 

아무리 해풍을 맞고 자랐더라도 일교차의 효과와 비교하면 다를 수 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이건 지역마다 선호하는 맛이 다른 이유도 됩니다 - 서울식 김치를 질기다 말하는 분들도 있지요)

 

해서.. 주말 농장을 하시는 분들 중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아직도 불암 3호 배추를 선호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

.

 

 

여기서 잠깐 문제의 핵심인 조선배추 이야기로 넘어가 봅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인터넷 원예백화점! 다농원예가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진으로 보듯 조선배추는 크고 뚱뚱한 얼갈이 배추라 보시면 됩니다.

 

지금 우리가 "배추, 배추..." 거리는 배추는 구분해 "호배추"라 불리었습니다.

말 그대로 중국에서 넘어온 배추입니다.

 

물론 조선배추도 중국에서 넘어온 것은 맞으나 토착화 과정을 겪으면서 조선배추의 잎은 보다 얇고 아삭해집니다.

반대로 호배추는 피가 두텁고 흐물거리지요.(중국식 볶음 요리에 적합합니다)

 

당연하게도 두터운 배춧잎은 다량의 수분을 머금고 있기 때문에 흐물거릴 수 밖에 없으니 애시당초 비교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

.

 

그럼에도 조선배추가 사라진 이유요?

 

그건 당연히 가격이 월등히 비쌋기 때문입니다.

조선배추는 맛은 좋았으나 냉해에 취약하기 때문인데 잎은 얇으며, 얼갈이처럼 속이 비어있기에 통으로 얼어버리기 때문이지요.

 

농담 좀 보태서 찬바람 맞았다 싶으면 그냥 다 버려야 합니다.

 

대신 호배추는 속이 꽉찼으며 잎이 두터워 잘 얼지 않으니 겉잎 몇장 떼어내면 되는데다 주로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 재배되는 

조선배추와 달리 맛은 둘째치고 전국 어디서나 잘 자라며 양은 압도적이니 당연히 호배추로 넘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심지어 양배추로 김장을 담근 경우도 있었으니 이에 비하면 이건 정말 양반인 겁니다. 

맛이 중요한게 아닌 유일한 반찬인 김치를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 이런 연유로 임오군란 이후 호배추가 본격적으로 조선에 유입되기 전까지 서울주변은 무를 베이스로 한 무 김치가 주류였으며

배추김치는 보조 김치 수준으로 그것도 양반집에서나 즐겨 먹던 김치가 되겠습니다.

대신 지방은 푸성귀(채소류) 김치가 많이 발달하는데 대표적으로 고들빼기, 갓김치가 있겠습니다.

.

.

 

이렇게 조선배추는 70년대 초반까지 호배추와 양립하면서 주로 부잣집을 중심으로 식탁에 올랐으나

1961년에 등장한 불암 1호 - 호(개량)배추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타남에 따라 조선배추는 가파르게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불암 1호 배추는 기존의 호배추와 달리 잎이 얇아 수분도 적고, 조선배추와 식감이 비슷했기 때문이지요.

 

이후 1980년대를 거쳐 1991년에 등장한 불암 3호 배추는 아예 조선배추의 씨를 말려 버렸습니다.

속은 알차지, 그간의 허여멀건한 것이 아닌 노릇노릇할 정도로 땟깔좋지, 병해충 강하지, 여기에 식감까지 조선배추를 쏙 빼닮았지...

 

세상에 그 누가 그 비싼 조선배추를 사먹겠습니까.

이렇다 보니 현재까지도 나이자신 분들은 불암 3호를 잊지 못하고 있는 전설과도 같은 배추로 자리매김합니다.

.

.

 

이렇게 밑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젠 본격적으로 김장을 시작합니다.

 

한 때는 정말 비싼 게랑드 천일염도 사용해봤지만(호기심으로) 옛 노인네들 하는 말 그를거 하나 없더군요.

천일염은 송화가루 날릴 때 구하라는 말은 정말 진리였습니다.

 

굳이 미원을 던져 넣지 않아도 감칠 맛이 그만이기에 배추 절이는 일부터가 즐겁습니다.

 

여기에 내린 황새기액젓 20% + 토굴 새우젓 80%는 겨우내내 먹을 김치로,

황새기액젓10% + 토굴 새우젓70% + 생새우10%  + 오징어 등 10%는 갓 먹을 김치로...

 

이러면 대충 끝난 셈이지요.

물론 무채, 미나리, 청갓, 홍갓, 쪽파 등을 넣는 것은 아무생각없이 던져 넣으면 됩니다.

 

버무리는 거?

훗~~ 천포기 버무리던 거에 비하면 그저 유희일 뿐입니다.

.

.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겠습니다.

 

2월 김장이 또 남아있고,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면 어리굴젓과 명란젓 등을 담그는 과정을 몇번 반복한다는게 있긴한데 이건 후다닥이니

이정도면 올 겨울은 그냥 든든하다 못해 뜨끈뜨근 할 겁니다.

.

.

 

앞으로 약 1달 정도는 아롱사태 수육과 평양냉면을 먹는 재미로 혹은 삼겹살 수육에 보쌈김치를 먹는 재미로,

이도 지겹다면 굴젓과 명란젓 등을 골라 먹는 재미로 그간의 노동을 보상 받는 일만 남은 것이지요.

 

이렇게 1년 동안의 노예생활도 마무리됩니다?!

 

아니군요.

 

정월엔 정월장(된장, 간장)을 담가야 하네요. 젠장~~

.

.

 

 

덧 1)

불암3호는 개량된 배추 품종명으로, 현재는 항암배추(먹으면 항암효과가 있는 배추) 혹은 눈에 좋은 베타(카로틴)골드등

정말 많은 개량종이 판매되거나 될 예정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식탁에서 "아삭함"을 선사한 대표적인 품종이기에 현재도 많은 이들이 찾고 있기도 하지요.

즉, 조선배추를 잊지 못하는 어르신을 중심으로 입맛이 길들여진 국민배추인 셈입니다.

 

해남지역이 휘파람 품종 등을 선호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일단 지역에 특화된 품종이라 할 수 있는데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 젓갈 등을 강하게 쓰는 지역적 특색에 맞게

잎이 보다 두터워 절임에 대한 저항력이 있어 보존성이 뛰어나 오래 보관해도 아삭함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고랭지배추와 차이는 있습니다.

 

 

덧 2)

서울식 김치는 애초에 멸치액젓 등은 사용칠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다가 맞겠군요.

대중적으로 유통 자체가 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멸치액젓 등은 주로 남해일대에서 사용했으며 주 베이스는 인근에서 잡히는 황새기 및 새우 등이며 대중적으론 새우젓만 사용했습니다.

마포포구가 새우젓으로 유명한 이유가 다 있는 법이지요.

 

황새기젓은 비싸다 보니 대가집 등 여유있는 집에서나 사용했는데 이게 1960년대 산업화 과정 등을 거치면서 지방인의 유입이 많아짐에 따라 

각 지역별의 다양한 젓갈류가 서울에도 자리잡게 됩니다.

 

따라서 현재는 서울식김치를 액젓으로 구분하기엔 무리가 따릅니다.

 

서울식김치의 특색은당연 오만가지 채소가 들어간다는 특징점과 특유의 깔끔함을 특정할 수 있겠습니다.

 

위에 언급한 맑은 선홍색 색감을 빼놓을 수 없겠는데 남도에 비해 추운 지역이다 보니 액젓을 강하게 쓰지 않아도

오랜동안 저장보관이 가능했기에 액젓 특유의 맛이 훨씬 덜합니다.

 

 

황새기(황석어) 젓은 보통은 1년이상 묵혀 맑게 뜨는 액젓을 사용했기에 보다 가볍고 깔끔함을 지향할 수 있었습니다.

황새기 자체가 담백한데다 맑은 액젓만 사용하다 보니 잡맛이 전혀없이 깔끔하고 새우의 감칠맛과 시원함이 어우러진 특징이 남게 됩니다.

 

남도 음식이 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따뜻한 지역 특색상 보관성을 높이려면 강한 소금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덧 3)

평양식 냉면은 소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하는 것은 맞으나 동치미와 일정 비율을 섞어 감칠맛과 개운함을 높인 하이브리드 냉면도

평양식 냉면에 포함됩니다. 주로 서울에선 여름엔 온갖 야채와 간장을 베이스로 한 골동면을, 겨울은 이렇게 평양냉면으로 요깃거릴 

하곤 했습니다.

 

덧 4)

송화 천일염에 대해 말은 많습니다. 가격도 2배 이상 비싼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요.

그러나 송화가루의 효능을 생각하고 현지는 의외로 저렴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충분한 고려대상이 됩니다.

 

무엇보다 직접확인한 타일염(장판을 사용한 천일염이 아닌)이기에 안전성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도 메리트겠지요.

(호기심 삼아 송화가루를 사서 소량의 김치를 담궈 보는 것도 재미진 일이 될 것입니다)

 

덧 5)

특정 루트를 통한다면 조선배추를 구할 수 있습니다만 맛의 특징은 알싸하면서 아삭한 맛이 특징적입니다.

갓김치 맛을 내는 배추김치 식감이라 보시면 될 듯 한데 종의 보존과 복원을 위해선 당연히 필요한 일이 되겠으나

그냥 호사가들 사이에서나 즐길 거리인 것이지 다시 대중화되긴 힘들 겁니다.

 

가성비 자체가 극악이기 때문입니다.

 

덧 6) 

2월 김장은 해남배추를 사용합니다.

이게 노지에서 빙점 이상의 겨울을 나면서 고랭지 배추와 같은 효과를 얻기 때문에 그 맛이 유별나지요.

 

즉, 단맛과 아삭함이 배가 되기 때문에 굳이 11월 김장을 거하게 할 이유는 사라졌다 보시면 됩니다.

2월 해남배추는 정말 맛있더군요.

 

 

덧 7)

굳이 고추씨(태좌 포함)를 제거하는 이유는 색을 잡기 위한 것도 있지만 매운 맛을 덜기위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소화력 혹은 위벽이 약해진 부모님을 위해선 필수 과정인 것이지요.

 

요즘 고추 품종은 매운 맛이 강해지는 추세이며, 같은 고추 품종이라도 재배 지역에 따라, 일조량에 따라 등등 캡사이신 함량이
각기 다르기에 가급적 고추씨를 제거해 매운 맛을 줄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또한 고춧가루 양을 늘리기 위해 점차 고추 피막이 두터워지는 추세라 정말 제대로 자연건조 시키지 않고서는

서울식 김치 특유의 색을 낼 수가 없습니다. 

 

덧 8)

굳이 배추품종을 추적해 배추를 구입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해가 갈 수록 부모님의 향수가 짙어지다 보니 이를 위한 방편으로 보시면 되며 굳이 선대를 따라

젓갈을 담그고, 김치를 담그고 하는 것 등도 부모님이 기억하는 입맛을 지켜드리기 위한 방편으로 보시면 됩니다. 

 

구입하는 것으로 결코 선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론 집안의 내림음식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 떠들지만 솔직히 다음 대까지 이어질 수도 없느 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