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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연 - 알면 쓸데없는 신비한 연필 이야기
lurkerman | 추천 (43) | 조회 (870)

2020-12-0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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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 연설 중 벌어진 퍼포먼스로 이는 당시 파리에서 벌어진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사건을 두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지를 위해 노란 연필을 치켜 들어 저항을 뜻한 퍼퍼먼스였습니다.

이후 노란 연필을 머리 위로 드는 것은 언론의 탄압과 검열에 대한 반감을 표시하는 행위이자 어떤 표현물이든 자유롭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지지이자 저항을 의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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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현재 연필의 제왕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파버-카스텔 사의 로고인 중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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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기사가 파버-카스텔 연필에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1905/6년의 일로 이미 1894년에 미국시장에 진출한 이래  파버-카스텔사의 영업 부진이 개선되지 않고 이어지자 현재의 카스텔 9000의 전신 격인 녹색 - 카스텔을 출시하면서 중세기사를 각인하기 시작합니다.

(좌측 기사의 창은 노란색 연필, 우측 기사의 창은 녹색 연필입니다 - 이는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를 실행에 옮긴 이는 파버 가문 출신이 아닌 알렉산더 카스텔 뤼덴 하우젠(1866년~1928년)백작이었습니다.

한국의 데릴사위 정도에 해당되지 싶은데 파버가의 5대 경영자인 빌헬름 폰 파버(오틸리에 부친)가 일찍 타계함에 따라 이미 그의 큰 딸인 오틸리에 폰 파버와 결혼한 상태였던 알렉산더가 이를 이어 받게 됩니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4대의 유지였던 파버 성을 이어 받는 것에 동의해 알렉산더 폰 파버로 개명하게 됩니다.(파버가만 경영 일선을 담당합니다)

이후 공격적인 성격을 십분 살려 당시 "명품 흑연"으로 인정받던 시베리아산 흑연을 카스텔 연필에 장착하면서 대대적인 선전을 하는데 이도 모자라 아예 카스텔-녹색 연필에 중세기사 2명을 각인해 출시하는 것을 단행하게 됩니다.

지금은 무의미한 그저 고풍스러운 로고에 지나지 않을 뿐이나 당시로썬 꽤나 파격적인 로고였기에 주변에선 "퍼버가는 망했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선택은 매우 탁월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카스텔 연필은 현재에 이르러 플래그쉽 격에 해당하는 카스텔 9000으로 이어지는 무려 115년이란 긴 세월을 명품 연필로 굳건한 자리를 지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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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상관없을 법하게 평행을 유지하던 2개의 일화는 코이누어(KOH - I NOOR) 연필이 등장해야 비로소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바로 그 사건의 중심에 놓여 있는 진정한 주인공이 바로 코이누어 연필이기 때문입니다.


문구류 그중 연필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 이가 아니면 매우 생소할 법한 "코이누어"는 1790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탄생했습니다.

창업자인 하르트무트(Hardtmuth)의 성을 따 "하르트무트"로 출시되었는데 그 무렵 연필 시장은 매우 조악했습니다.

당시 최상급에 속하는 흑연은 영국산이었으나 흑연은 연필 외에 대포탄을 생산하는데 매우 중요한 재료로 사용되었기에 영국은 이를 수출금지 품목으로 묶어 버리게 됩니다. (영국 대포가 유명했던 비밀 중 하나는 흑연이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독일의 파버 사 등은 자국의 저급 흑연에 황을 섞는 것으로 대체했으며, 프랑스 퐁테 사 등은 역시 자국의 저급 흑연에 점토 등을 섞는 것으로 겨우 연필의 명맥을 유지하게 됩니다.

이중 퐁테의 방식은 매우 훌륭한 선택으로 단숨에 독일 연필을 아예 싸구려 이미지로 변질되게 만들었습니다. 

 

퐁테 방식이 현재의 연필심 제조 방식이기한 대단히 획기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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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트무트는 이들보다 늦은( 이미 1650년 경에 연필이 생산되고 있었으며 파버의 역사는 1735년에 시작되지요) 1790년에 그것도 연필과 전혀 상관없는 도기 공장으로 출범했습니다.

당시 사회적으로 흑연의 문제가 심각했던 시기였기에 하르트무트 역시 이를 고심하던 1802년에 흑연과 점토의 조합에 의한 흑연 리드의 생산 특허를 획득하게 되고 이를 납품하던 중 아예 1808년에 연필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게 됩니다.

따라서 하르트무트(코이누어)의 역사는 파버가문보다 매우 늦다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한 세기가 바뀌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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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버-카스텔의 현재 로고입니다.

너무 올드하다(고풍스럽다)는 이유로 어느순간 사라졌다가 1990년에 부활한 것으로 코이누어와 치열한 전쟁을 벌인 끝에 승리를 쟁취한 파버 사 입장에선 버리기에 아까웠을 법한 로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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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르트무트 본사가 있던 오스트리아 - 빈은 연필 공장을 운영하기엔 환경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상업적으로 공업적으로나 연필 공장을 이어갈 환경이 아니었기에 체코의 부데요비체로 공장을 옮기게 되지요.

상공업이 발달했던 부데요비체였으며, 마침 최상급에 해당하는 시베리아산 흑연을 들여 올 경우 물류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있는 최적의 위치였기에 고민없이 공장을 이전하게 됩니다.

어쨋든 같은 합스부르크 제국 - 오스트리아 제국 - 오스트라아/헝가리제국인 것은 변함없었기 때문입니다.


체코 부데요비체로 이전 후 하르트무트는 날개를 달게 됩니다. 바로 하르트무트가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1889년 최초의 노란색 연필이자 코이누어가 연필계의 제왕으로 우뚝 올라선 "코이누어 1500(KOH-I-NOOR)"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 유명한 코이누어-다이아몬드의 이름 따 탄생한 코이누어 1500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17계조를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연필을 생산하게 되며 흑연은 최고급 시베리아 산을 장착해 최고급 연필의 대명사로 불리게 됩니다.

코이누어 1500연필이 워낙 유명했기에 사명도 하르트무트가 아닌 "코이누어-하르트무트"로 바꿀 정도의 인기를 끌었으니 만년필로 치면 지금의 몽블랑 위치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이듬 해인 1890년에 침체된 유럽시장을 벗어나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 신세계-미국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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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코이누어 1500 출시 뉴욕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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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기사를 앞세운 화끈한 도전자 코이누어 1500은 미국에서도 손쉽게 고급 연필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쩌리 기사(연필)들을 거침없이 물리쳐 주마!!! 하는 자신감(의미)인 것이지요)

조악하기 그지없는 저급 흑연이 아닌 매끄럽기 짝이 없는 최고급 - 시베리아산 흑연에 무려 17단계의 농도를 표현할 수 있는 계조 분할은 미술가부터 문필가까지 매료될 수 밖에 없는 유일한 연필이었기 때문입니다.(연필의 주요 소비층은 건축, 미술, 문학계가 독차지 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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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코이누어는 이에 만족치 않고 획기적인 또다른 무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연필은 천연목 그대로 혹은 짙은 색으로 덧칠된 연필이 전부였으나 코이누어는 이들과 전혀 다른 "노란색"을 선택했습니다.

합스부르크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기 색인 노란색을 따라 연필에 노란색을 입힌 것인데, 당시 유럽에서의 노란색 이미지는 과거부터 이미 창녀 혹은 유대인 혹은 오늘날의 일진 등을 표현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기에 매우 기피되는 색이었습니다.

그러나 코이누어는 이를 무시하고 합스부르크 제국의 자부심을 되찾고자 하는 의미로 노란색을 선택하는데 결과론적으로 보면 하르트무트의 전략은 매우 탁월한 그리고 효과가 큰 선택이 됩니다.

유일한 노란색 - 합스부르크제국의 자존심 - 은 바로 사용자의 품격을 높여 준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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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인천의 옐로우하우스는 표면적으론 미군부대에서 우연히 받은 노란색 페인트로 칠한 바람에 "옐로우하우스"로 불리게 되었다 알려져 있는데 실상은 집창촌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미군부대에서 잉여물품을 제공할 때 아예 도색용으로 창녀를 뜻하는 옐로우 색을 건넨 것이 더 정설에 가깝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노란색=창녀의 인식은 당시 서구의 보편적 인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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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누어 1500의 상징인 노란색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농도가 변하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노란색 계열인 것은 변함없어 약 130여 년에 지난 오늘날에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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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입니다.

코이누어의 노란색 침공으로 깜짝 놀란 미국의 연필 제조사인 딕슨, 이글 등은 이후 무조건 노란색 연필을 기본적으로 출시하게 되었으며, 현재도 미국 연필시장의 75% 이상은 노란색이 차지할 정도로 코이누어의 노란색 침공은 문화 전반에 걸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고급연필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가 묻는다면 "지금은 더 이상 고급연필이 아닌 대중연필의 범주에 지나지 않는 그저그런 인기 연필일 뿐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자체적으로도 코이누어1900을 상위 연필로 출시한지 오래이며 파버가문의 알렉산더 공격이 의외로 매서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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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미국-뉴욕의 유명 잡지였던 "American Stationer"에 게재된 파버-카스텔의 광고입니다.

빨간색 밑줄에 표시된 "노란 기사"는 바로 코이누어를 지칭한 매우 공격적인 광고입니다.

광고 뿐만 아니라 파버-카스텔의 모든 문구류엔 중세기사 2명의 결투가 마킹되기 시작했는데 치졸하게도 노란 연필을 든 기사의 패배를 의미하는 부러진 상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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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코이누어의 미국 침공이 시작된 1890년 이래 1907년까지 미국의 연필시장은 코이누어가 완벽히 지배하던 세상이었으며 최소한 1차 사계대전 발발시기인 1914년까지만 해도 그 위치는 너무도 공고했습니다.

이에 파버-카스텔은 사운을 건 녹색연필(카스텔)을 앞세워 거센 공격을 펼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1894년에 이미 미국에 진출했으나 도저히 코이누어의 벽을 넘을 수 없었습니다)

한치의 물러 섬도 없던 이들의 지리한 싸움은 의외로 파버 가문의 싱거운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하르트무트의 체코 이전 전략은 당장은 유리했을 지 모르지만 1,2 차 세계대전이란 격동기를 겪으면서 수많은 숙련 노동자들이 전장에서 사라졌으며 본사 역시 공산권 치하에 갖힘에 따라 더이상 과거의 명성을 이어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연필의 성능 혹은 마케팅 전략에 따른 것이 아닌 뜻하지 않은 세계대전으로 인한 지극히 어의없는 방식에 의한 결과물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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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체코의 부데요비체를 방문하면 코이누어 매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미 세계각국의 많은 여행객들이 빠자지 않고 찾는 관광명소의 대명사격이 된지 오래입니다.


아니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직구가 가능하기도 하지요(배송비 2만원만 감수하면 됩니다)

그러나 공산권 치하에 갖혀 있는 동안 도전자 파버-카스텔의 카스텔은 파버-카스텔 9000으로 진화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현재는 더이상의 패권자가 아닌 도전자로 명운이 뒤바뀐 상태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논리는 더이상 코이누어가 패권에 도전할 기회를 주지 않고 않고 있기 때문이라도 냉전시대가 종식된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코이누어의 도전기는 감상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렇기엔 스태들러, 까렌다쉬 등 물리쳐야 할 구)독일연방 소속의 명가들이 굳건히 존재하고 있으며, 미쓰비시, 톰보우 등 재펜머니를 앞세운 일본의 명가들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코이누어가 존재했기에 위의 사진 두장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변함없는 역사적 사실이기도 합니다.
다만 과거의 패권자 위치를 점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함정만 존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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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누어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을 법한 패권자 파버-카스텔 점보 9000의 고고한 자태입니다.
각인된 로고때문에 일부러 점보 연필을 골랐지만 많은 이들에게 파버-카스텔 9000의 녹색 색상은 꽤 익숙하며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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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1)

코이누어 1500은 유난히 사각거리는 느낌이 뛰어난 연필 중 하나입니다. 사각거리는 느낌의 최고봉은 아무래도 포르투칼 - 비아르쿠를 뛰어 넘을 순 없겠으나 부드러운 필기감과 생동감 있는 사각거림의 조화는 여전히 코이누어가 최고입니다.

덧 2)

한동안 스태들러 루모그래프의 부드러운 필기감이 좋아 애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만나 파버-카스텔의 시퍼렇게 날선 듯한 사각거림에 반해 이후 이를 애용하게 되었지요. (비아르쿠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었습니다만)

코이누어 1500은 이런 측면에선 파버-카스텔 9000과 비슷한 계열입니다. 이렇게 비슷한 스타일이 만나 진검승부를 벌이고 결국 최후의 승자는 파버 카스텔이 차지하면서 그 영광의 순간이 로고로 남아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는게 재밌는 부분이지요.

 

덧3)

당시 미국을 침략한 코이누어의 노란 연필은 공공의 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너도나도 이를 뛰어 넘으려 카피 생산하면서 노란색이 범람하게 되었고 이런 영향으로 미국 내를 한정해서 노란색은 국민연필로 등극하게 된 것이지요.

 

이후 다시 미국의 연필문화가 세계로 퍼지면서 현재는 범 세계적으로 노란색 연필이 가장 대중적인 연필이 됩니다.
심지어 파버-카스텔, 스태들러에서도 노란색 연필을 생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