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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이야기 1 - 식물학적 접근
lurkerman | 추천 (32) | 조회 (615)

2020-12-16 12:41

* 산을 찾는게 취미의 전부일 때가 있었습니다. 다만 체력이 저질이라 산을 오른다는 건 내려오는 그 순간까지 발끝만 보고 다닌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산을 찾으며 처음으로 주위의 식물군을 보며 걷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큰애가 심장병을 앓던 무렵이었습니다. 당연, 아이 때문에 높은 산을 오를 순 없어 대신할 겸 찾은 자연휴양림 주변을 거닐며 아이가 궁금해하는 온갖 식물을 두리번거리며 바라보던 게 처음이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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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한참 흐른 어느 해부터는 갓 걷기 시작한 늦둥이들과 산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리고 체력이 예전만 못하니 - 소싯적엔 백일도 채 되지 않은 큰 애를 캐리어에 앉혀 둘러메고 치악산이며, 살악산이며 새벽산행을 오르내려도 거뜬했는데 이것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 근교 산행이나 수목원 등을 찾는게 전부였지만 대신 난생 처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늦둥이 1호기의 탈모 때문에 가급적 아이가 원하는 건(바라는 건)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주는 입장인지라 산을 오르내리며 도토리를 찾을 땐 당연 고개를 한껏 제친 후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니 시작된 버릇입니다.

 

나뭇잎 따라 혹은 숲을 이루고 있는 수목에 따라 도토리가 밀생해 자라는 곳이 따로 있기에 발끝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며 숲을 헤집고 다니기 마련이지요.

늦둥이 1호기가 까탈스러운 게 반드시 도토리가 모자를 쓰고 있어야 진정한 도토리로 인정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도토리 모자도 삐죽거리지 않고 오돌도돌한 것만 도토리로 인정한다는 것이지요.  이렇다 보니 땅에 떨어져 탈피된 도토리는 거들떠 보질 않으며 기껏 구했어도 삐죽거리면 이 또한 도토리가 아니니 한껏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만 바라보는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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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늦둥이 1호기가 모르는 비밀이 도토리에게 있다는 사실...

 

그러나 그 비밀을 풀어 주려면 저 멀리 제주도나 남해안 일대를 찾아야만 가능하다는 사실때문에 여지껏 비밀로 간직하고 있는데 올해는 이미 늦었고 내년 가을엔 도토리의 비밀스러운 참 모습을 알려 주기 위해 찾아야 할 듯 합니다.

언제까지 비밀로 숨기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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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도토리하면 다같은 도토리로 알고 있고 또한 굳이 이를 구분치는 않습니다.

다만 지역에 따라 상수리와 도토리를 구분하기도 하고, 도토리중 상수리를 으뜸으로 치는 웃지 못할 경우도 접하게 되는데 식물학적 분류를 보면 우리가 부르는 도토리는 약 23종에 이르는 무지막지한 종류가 있습니다.
(그리고 상수리를 굳이 도토리와 구분지을 이유도 없는데 이건 인문학적 접근에서 따로 다루겠습니다)

다만 이를 굳이 전부 구분하며 알 필요가 없는 것은 대부분의 한반도 내륙지방에선 사실상 참나무 6대장(혹은 6형제)만 알면 모든게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내륙지방은 낙엽-활엽수에 속하는 상수리나무 - 갈참나무 - 굴참나무 - 떡갈나무 - 신갈나무 - 졸참나무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낙엽-활엽수라는 점이 되겠습니다. 이 말인 즉, 상록-활엽수도 있다는 걸 의미하는 아주 중요 포인트인 것이지요.

따라서 위에 말한 늦둥이 1호기가 아직 모르는 비밀이 바로 상록-활엽수에 담겨져 있는데 우선 윗말을 매듭지어야 하니 말씀드리면 낙엽-활엽수는 참나무과 - 참나무속 -참나무아속에 속하는 식물군의 통칭을 달리 부르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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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상록-활엽수는 참나무과 - 참나무속 - 기시나무아속에 속하는 식물군을 통칭하는 것이라 보시면 되는데 특성상 내륙에선 월동이 되지 않는 관계로 찾을 수가 없고 대신 남부 해안가 또는 제주도 일대에서만 자생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린 묘목을 기후에 적응하여 내륙에서도 키울 순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 성과가 있는데(군산 등) 사실상 이걸 기후에 적응하여 자라는 것으로 봐야할지 아니면 온난화로 인해 자생할 기후조건이 갖춰진 것으로 봐야할지 제가 검증할 방법이 없으니 패스토록 하겠습니다.

중요한건 가시나무아속은 현재까진 내륙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거...
따라서 내륙지역은 참나무 6대장만 알면 도토리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게 핵심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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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는 꼬투리(모자 혹은 뚜껑)가 크게 3가지 형태로 나뉩니다.

일단 가시나무아속은 제외한 참나무 6대장은 그림으로 구분할 수 있을 터인데 이건 크게 2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마치 바늘처럼 삐죽삐죽거리는 형태와 오돌도돌한 형태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늦둥이 1호기의 표현입니다)

사실상 꼬투리(각두)는 모두 인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게 피침처럼 곧게 서느냐 아니면 세모꼴로 비늘처럼 붙어있느냐의 차이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가시나무아속에 속하는 것들은 모두 소켓모양처럼 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지요.

따라서 도토리 구분은 일단은 각두형태로 분류-접근하는게 가장 빠릅니다. 그리고 나뭇잎 형질에 따라 - 나무의 피에 따라 구분하면 그 종을 틀림없이 맞출 수가 있겠는데 아이들에겐 각두 형태로만 접근하여 알려줘도 대번 아빠를 보는 눈빛이 블링블링할 겁니다. ^^


참나무아속에 속하는 종들의 특징입니다. 도토리는 크게 각두에 따라 2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토리 형태 등에 따라 굳이 나무와 잎을 보지 않더라도 그 종을 알 수 있는 특징들이 각기 다릅니다.



내륙에서 볼 수 없는 가시나무의 도토리는 각두가 이렇게 소켓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도서지역 또는 해안가에 사셨던 분들은 거의 대부분 도토리하면 이런 모양을 연상하겠는데 반대로 내륙에선 이를 구경조차 할 수 없으니 일부러 찾아가야 하지요.(저 역시 내년엔 늦둥이 1호기와 함께 다녀올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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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가 떨어지는 순서는 신갈나무가 가장 먼저 떨구고(빠르면 8월 말에도 떨굽니다) 굴참나무 - 떡갈나무 - 상수리나무 - 갈참, 졸참나무 순입니다.

다만 신갈나무와 갈참, 졸참나무는 그 시기가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되나 나머지는 큰 차이가 없다 보시면 될 정도로 미묘한 차이만 존재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도토리가 익어 떨어지더라도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지질 않고 같은 나무에서도 순차적으로 톡, 톡 떨구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는 생존과 관련된 것으로 보통 도토리는 저장되지 않는 속성이 있기에 떨어지는 당해년도에 조건만 맞으면 바로 뿌리를 내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따라서 한꺼번에 떨구었다가 온도라도 맞질 않으면 종이 절멸할 위기를 맞게 될 터이니 본능적으로 시간 차를 두고 딸군다 보시면 되겠습니다. (보통 영상 5도 이상에서 발아하여 뿌리를 내립니다)

신갈나무의 경우는 시기가 다른 종보다 이른 편이라 월동시점에 보면 뿌리가 이미 땅속 10cm이상 깊이에 자리잡은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정도 숲의 연령이 되는 곳이면 도토리나무가 같은 종이 군집을 이루며 밀집된 형태로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대부분은 도토리를 줍는 인간의 발길에 의해 대부분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쓸려가고, 뿌리가 안착되기도 전에 발길에 채여 꺽여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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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인간들의 주요한 식량자원으로써 약탈(?) 당한 탓인지는 몰라도 참나무아속에 속하는 일련의 수목들은 교잡종도 쉽게 태어납니다.

반대로 가시나무아속에 속하는 무리는 또 교잡종이 자연에선 이루어지질 않는데 생각해보면 빙하기를 겪으면서 우선 태어난 것이 낙엽-활엽수였을 터이니 참나무아속의 생존본능에 따른 선택은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물론 한반도 내 자생 지역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특별한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 낙엽-활엽수에 속하는 이런 교잡종들도 현재는 제법 그 수가 많은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물참나무입니다.

신갈 +졸참의 교잡종인 것이지요.

이 외에도 떡갈 + 졸참이 만나 떡속소리나무가 탄생하였으며, 갈참 + 신갈이 만나 봉동참나무가 탄생합니다.

심지어는 특정지역인 정릉에서 발견된 정릉참나무는 상수리와 굴참나무의 교잡종인 것이니 종을 가리지 않는 무분별한 근친혼(?)으로 인헤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참나무속들이 나타난다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선 비교적 한반도에 늦게 등장한(자리잡은) 가시나무아속은 아직도 고결하기만 하니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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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막은 굴참나무와 손기정옹의 월계수로 장식토록 하겠습니다.

저 역시 꽤 오랫동안 착각하며 살아왔습니다만 강원 산골에 화전민들이 터잡고 살던 시절에 "굴피나뭇집"이 있었지요. 대부분은 당연하게도 굴피나무 껍질로 지붕을 엮었다 하여 굴피나뭇집이라 불리었을 것이라 생각했겠으나 전혀 상관없는 굴참나무 껍질(피)로 지붕을 엮은 것이지요.

굴참나무를 베어 껍질로 지붕을 만들고 곧고 단단한 특성을 지닌 목재는 기둥과 내벽 등을 만드는데 사용하고, 남은 부산물은 또 장작으로 활용하는 등 정말 다양한 쓰임새가 있었던 나무였던 것이지요.

손기정 옹의 월계관은 또 월계수가 아닌 대왕참나무(핀오크)입니다. 역시 참나무속이니 만큼 도토리가 열리긴 합니다만 다프네(월계수)가 아닌 짝퉁 참나무였다는게 뒤늦게 밝혀졌으니 기념식수 당시 세운 비문의 월계수가 민망할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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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조성모가 부른 노래 중 "가시나무"가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곡이다 보니 나무위키에도 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가사와 노래제목에 포인트를 맞춘 나머지 나무 소개는 이미 저멀리 산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가시나무 종류를 열거는 했는데 가시나무와 전혀 상관없는 아까시나무, 산초나무 등을 소개하면서 관목형태라 쓰임새가 없고 가시가 많아 형벌 또는 가시면류관 등으로 쓰였다..는 정의하고 있지요.

그러나 가시나무는 예로부터 가시목(加斜木)이라 하여 국가에서 군장기로 활용하는데 주요한 목재 활용되었으며 심지어 일본에선 왜선을 제작하는데 없어선 안될 나무이기도 했습니다.

정조실록에 보면...

정조 18년인 1794년에는 호남 위유사 서용보가 올린 별단에 "섬에서 가시나무 군락지를 발견하여 보고함 - 군기(군장기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목재)로 주요한 쓰임새가 있는 기사목을 발견하여 보고함.."이라 올릴 정도이니 가시목의 중요성이 얼마나 컷던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터입니다.

가시나무 자체가 20m가 넘는 수고를 자랑하는 교목이기에 나무위키의 가시나무 소개는 전혀 다른 차원이며 조성모의 노래가사와 뜻에 억지춘향격으로 끼워 맞춘 거라는데 한표 던져 봅니다.

 

다만 은유적 표현으로 고난 혹은 고통을 상징하는 "가시"를 뜻한 가시(달린) 나무를 표현한 것일 수 있으니 최소한 참나무과 가시나무는 병행해 언급했어야 하겠지요. (이 글을 작성한 시점엔 아예 본문에서 누락된 상태였습니다. 금일 검색해 보니 표기되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