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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선진국 지위를 획득하면서 아시아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벤치마킹 대상이지만
예전에 삼일운동도 아시아 각국의 독립운동의 시초였죠.
그런데 미얀마의 경우 여러가지 부분에서 한국을 따라하는 면이 있습니다.
솔직히 저 정돈되지 않은 스카이라인은 무분별한 난개발의 상징이라 별로 좋아보이지 않지만 미얀마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인가 봅니다. 민주화되면 저렇게 발전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많이 사용하죠.
그럼 어떤 점이 미얀마가 우리를 따라하는지 살펴보죠.
우선 두 나라는 1948년 정부를 수립합니다.
뭐 이건 2차대전 후 독립하게 되는 국가들이 비슷한 시기에 정부를 수립하는 거니 그렇다치고
1. 최초 쿠데타
아버지 박통이 1961년 516을 일으키면서 정권을 잡는데
미얀마에서는 네 윈이 1962년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습니다.
2. 박통의 최후와 네 윈의 흑막정치
아버지 박통이 1979 탕탕절에 죽자
네 윈은 나는 저렇게 되면 안되겠다 해서 1981년 대통령에서 물러나서 2선에서 상왕정치를 합니다.
그 모습을 감명깊게 본 전두부가 벤치마킹 하러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뻔 하죠.
1983 버마 아웅산 테러사건이 일어나죠.
3. 6월 항쟁과 8888 항쟁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한국은 민주화되고
이에 영향을 받은 미얀마는 1988년 8888 항쟁을 하고 중국에서도 천안문 사태가 벌어지죠.
둘 다 무력진압을 받는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군부 내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서 네 윈을 몰아내고 아랫세대 군부가 실권을 장악합니다.
우리로 따지면 박정희 세대가 숙청되고 전두환 세대가 실권을 잡는 셈.
중간에 박통이 죽은 것 빼면 쿠데타 2번 일어났다는 것도 비슷
4. 행정수도 이전
우리나라는 아시다시피 2002년 노무현 대선후보 공약으로 나와서 취임 후 행정수도 이전 기획단이 설립되죠.
이어 2003년 말 행정수도 이전법이 통과되고 2004년 초 선포되나 같은 해에 헌법재판소에서 초유의 관습법 운운하면서 위헌 판결받죠.
그후 행정복합도시 형태로 변경되어서 진행되어서 현재에 이릅니다.
솔직히 수도이전을 한 국가는 많으니 이것마저 베꼈는지 모르겠지만 미얀마도 2004년부터 수도이전 루머가 돌더니 2008년 전격시행합니다.
다만 우리보다는 아직 성공적이지 못한 듯 합니다.
뭐 대부분의 수도이전 국가들이 초반에는 부작용이 어마어마 했으니까요.
5. 마지막 쿠데타
이건 베꼈다기 보다는 시기적으로 비슷하다는 것인데 기존 적폐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한국은 2017년 탄핵전후에 조현천 기무사령관 중심으로 기획되었으나 추미애에게 견제되면서 실패했는데
미얀마에서는 2021년 아웅산 수치가 군부의 정치개입을 막는 개헌을 시도하자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다시 잡습니다.
우리도 추미애가 못 막았으면 저 정도는 아니었더라도 막장테크 탈 뻔함....ㅡ.ㅡ
근데 군부가 아니더라도 정치권에도 협조한 색히들이 아직도 정치하고 있고....
조현천은 아직도 미국에서 도피중인데 간짜장 검새들은 잡을 생각도 못하고....(아니 안 하고)
아무튼 이러한 벤치마킹 과정에서 미얀마에서는 한국의 민주화와 산업화를 배우자 하면서 80년대 말부터 공부가 시작되었고
최근에는 1987과 택시운전사 같은 영화도 많이 보고,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것도 번안해서 부르곤 하죠.
우리가 민주화에 성공한 것은 올림픽 같은 이벤트의 덕도 있었고요.
미얀마의 경우에는 소수민족과의 갈등이 있어서 정치가 너무 복잡해지는 경향도 있습니다.
국민의 1/3이 소수민족이라 각자 분리독립 원하는데, 그 민족들이 원하는 땅은 전부 자원의 보고...ㅡ.ㅡ
그러니 무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러면 군인들은 쿠데타....
지금은 민주화 세력이 소수민족 무장세력과 합쳐지는 그림인데 그렇다면 내전으로 가는 수순
그런데 마침 코로나 델타변이로 동남아 초토화 되면서 미얀마에서도 창궐하고
군부에서는 방역 핑계로 시위 탄압하기 딱 좋고....
미국은 너무 복잡한 상황이니 일단 돌아가는 거 보겠다는 스탠스이고 (그리고 군사개입 한다고 쳐도 코로나 상황이라 해외파병 불가능)
중국은 이참에 미얀마 찜하겠다는 거고....
미얀마 민주세력은 한국의 지지를 간전하게 원하지만
한국은 정부차원에서는 군부의 민간인 학살 규탄하는 수준이고
그나마 광주시 차원이나 불교계 차원에서의 지지하는 수준
그거라도 미얀마에서는 너무나 감사한 상황이죠.
1980 광주에서는 해외에서 아무런 지지도 없었으니....
순시리를 비롯해서 미얀마에서 꿀 빨려던 기독교계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그 소수민족은 영국 식민지 시절 기독교 개종 많이 했다고 합니다.
즉 국민 2/3인 버마족은 불교 1/3 소수민족 상당수는 기독교 나머지 소수 로힝야 등은 이슬람......
이러니 복잡하다는 거
아무튼 평화로운 해결을 바라지만 절대 평화롭지 않게 해결될 것 같은 미얀마 얘기였습니다.
한줄요약: 503 일때 이거 일어났으면 순시리 투자한 거 지키러 그네가 뭔 짓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