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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 정상화라 외치며 국민의 소리를 무시하며 폭주 기관차 마냥 내달리고 있는 정부.
그렇게 내달리며 외쳐대는 '한일 국교 정상화'라는 말을 듣다 생각난
우리 근현대사의 민낯이기도한 뭐같은 역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금 외쳐대던 한일 국교 정상화.
이 한일 국교 정상화는 현재 처음 쓰인 말이 아니며 1960년대 그러니까 장면내각이 미국을 설득해 미국의 지원을 받아
경제개발 5개년을 발표하고 미국은 한국의 정치 개혁 및 부폐 척결, 교육 개혁까지 지원하려던 직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에 의해 처음 쓰여졌고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게 되죠.
그리고 박정희는 조약이 체결되기 직전 일본 극우파의 대부인 '기시 노부스케'에게 감사 편지를 보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의 만남은 이뤄질 수 있었을까요?
1961년 11월 11일,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신분으로 박정희는 미국을 방문하면서
곧장 미국으로 가지 않고 일본을 방문합니다.
일본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모습이며 한국 역대 대통령 중 최고의 의전을 받았음.
그날 저녁 만찬회에서 박정희가 직접 초대한 한 노인을 만납니다.
이 노인은 만주 군관학교의 교장이었던 '나구모 신이치로'
박정희가 일본 정부에 간곡하게 요청하여 '나구모 신이치'로와 만난 장면
그를 만나자 박정희는
"나구모 선생님의 지도와 추천 덕분에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여기 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나구모 선생님께서 저를 이렇게 키워주셨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했고 심지어 예를 갖춰 깎듯이 대하며 큰절까지 올렸습니다.
일본 국영방송 NHK의 뉴스를 통해 보도된 장면
이 모든 것은 일본 국영방송인 NHK를 통해 생중계 및 보도 되었고,
만찬장에서 이 모든걸 지켜보는 사람 중 훗날 '아베 신조'의 외조부가 되는 인물이기도 한
A급 전범이자 극우파의 대부 '기시 노부스케'도 있었습니다.
만찬장에서 '기시 노부스케'와 처음 만난 대화를 나누는 장면
그날 만찬장에 모인 인물들과 박정희가 만난 일본 정치계의 인물들은 모두 극우파들이었습니다.
실제 그들은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한국의 개발에도 가장 적극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한일국교정상화를 위해서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을 통해 한국을 압박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1961년 만남이 성사되기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극우파들은 왜? 그렇게까지 적극적이었을까요?
그 해답은 이 한 사람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바로 일본 극우파의 거물인 '요시다 시게루'
일본 극우파의 거물이자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던 '요시다 시게루'
'요시다 시게루'는 한일 국교 정상화에 앞서 극우파들이 모인 자리에서 당당하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의 길을 따라 재차 조선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만창장에서 박정희가 보여준 모습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랬으며,
이내 모두가 흡족해 하며 박정희를 향해 박수를 보냈고 만찬이 끝날때까지 웃음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앞서 보인 모습을 통해서 기시 노부스케는 박정희를 통해 극우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자
기시 노부스케는 박정희를 요정으로 초대했으며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본어로 박정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만찬을 한 다음 날 저녁 '기시 노부스케'가 요정으로 초대해 잔을 나눈 장면
"혁명(5.16 쿠데타)을 했을 때 일본 명치유신의 지사들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명치유신의 지사들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훗날, 기시 노부스케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 만남에 나눴던 이야기들과
자신이 본 박정희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젊은 군인들이 정치와 경제를 몰랐으며, 일본 정치인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왔었다"
이 만남에서 박정희는 기시 노부스케를 자신의 스승으로 모시며 많은 지도와 편달을 부탁했습니다.
기시 노부스케는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이 두 사람은 처음부터 단순한 만남이 아니였으며,
일본 극우파들에게 있어 박정희는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단이었고
박정희에게 있어 기시 노부스케를 필두로 하는 일본의 극우들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오랫동안 유지시켜줄 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십년 만에 해제된 '미 CIA 보고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해제된 미 CIA 보고서 내용 中
1965년 6월 22일, 마침내 한일국교정상화라는 명목하에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됩니다.
이날은 명실공히 일본 극우파들의 또 한번의 승리였으며, 한국에서 기시 노부스케라는 인물이
군부독재 시작인 3공화국부터 마지막 5공화국과 6공화국의 시작인 노태우에 이르기까지
군부의 막후로써의 시작을 알리고 포문을 연 날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