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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크리스마스!
유워리 | 추천 (0) | 조회 (342)

1999-12-24 09:53

메리 크리스마스!
<< Written by Your-Lee >>


동족상전으로 폐허가 된 고국 산천이 아픔을 딛고 막 일어서려던 60년대 초, 낙동강의 끝자락 강가의 조그만 마을에 축복 받지 못한 한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위로는 이미 두 언니들이 있었기에 예쁜 고추를 단 아들을 염원해 온 부모들에게 조가비는 식구를 늘인 것에 불과했습니다.

뒤이어 태어난 남동생에 의하여 그녀는 더욱 차가운 대접을 받아야 했습니다.
남들은 서너 살까지 먹는다는 젖을 그녀는 1년도 채 넘기지 못하고 뺏겨야 했습니다.
당시 어린 그녀에게 유일한 먹거리였던 젖을 뺏어간 동생을 그녀는 미워했습니다.
그건 크면서 남자를 향한 막연한 저주로 변해갔습니다.

책 보따리를 메고 언니들을 따라 학교를 가기 시작하던 시절, 그녀는 학교에서 못 말리는 가시내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못 먹고 자라서 키가 작았던 그녀지만 그녀의 손톱과 이빨 앞에 당해 낼 머시매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흘이 멀다하고 그녀의 집에는 그녀에게 할퀴고 물린 애들의 엄마가 찾아왔습니다.
그녀의 부모가 학교로 불려간 것도 수십 번...
시골 조그마한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 소란은 금방 전 면으로 퍼져나갔고 이제 그녀의 불량 전적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정학을 몇 번 그치다 퇴학되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그녀는 30리도 넘는 길을 걸어야 하는 다른 학교로 전학했습니다.
다행히 전학한 곳에서는 별 말썽을 피우지 않아 무사히 졸업하여 중학엘 진학했습니다.

남녀공학이던 그곳에서 옛 친구들과 그녀를 정학케 한 장본인들을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올망졸망하던 얼굴은 여드름투성이의 꺽다리로 변해 있었습니다.
어릴 적의 굴욕을 여태 기억하고 있던 그들 중 하나가 그녀를 혼내줄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게 악연의 시발이었습니다.

"난 널 기억한다. 그 기억이 내 인생의 오점이기에 나는 오늘 그 오점을 지우려 한다!"

그녀에게 날라 온 그 문구는 마음잡고 살려는 그녀에게 저주의 심지에 불을 붙인 꼴이었습니다.

男과 女의 대결.

일찍이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시대는 그걸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물러설 그녀도 아니었기에 그 대결은 성사되었고, 역사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온 거리를 밝히고, 요란한 축배의 소리를 거리마다 울렸습니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종소리 울려서
장단 맞추니
흥겨워서 소리 높여
노래 부른다

종소리 울려라
종소리 울려
우리 썰매 빨리 달려
종소리 울려라
종소리 울려라
종소리 울려
우리 썰매 빨리 달려
빨리 달리자

거리는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부딪히는 발길이 그날의 설레임을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세기의 대결을 구경하러 나온 인파들이라 생각하니 벌써 그녀의 주먹이 근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꽉 다문 이빨도 더드득 더드득 갈렸습니다.

결투장에 도착했을 때 벌써 모인 인파들이 내 뿜는 열기와 담배 연기로 자욱했습니다.
아직 도전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신발끈을 적당히 풀어 두었습니다.

여차하면 단련된 足 수도로 그의 정곡을 찔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리에서와는 달리 그곳에서는 끈끈한 째즈음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음률은 그녀의 긴장한 가슴을 쓸었습니다.

이윽고 도전자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역시 그도 사나이답게 졸다구는 데리고 오지 않았습니다.
까만 교복바지에 가죽잠바와 가죽장갑까지 낀 모습이 그녀 앞으로 다가섰습니다.
날카로운 눈빛이 스쳤습니다.

드디어 도전자의 입이 벌어졌습니다.

"야! 뭘로 할까?"

그녀는 대답대신 고개를 치켜세우고 턱으로 뭔가 가리켰습니다.

곧 각자 앞으로 무기가 날라져 왔습니다.
먼저 그녀가 무기를 움켜쥐자 그도 무기를 거머쥐었습니다.
그녀는 무기를 빼기 전 도전 받는 자로서의 한마디 경고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일수불퇴, 최후까지 남는 자가 이긴다! 진 자는 다신 도전하진 못하며 평생 복종한다! 오케이?"
"알았어!"

서로의 무기가 뽑혔습니다.
무기엔 벌써 둘의 긴장감을 대변하듯 차디찬 냉기 속에 게거품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끈끈하게 흐르던 음악은 처량한 음률을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둘 중 하나의 최후를 슬퍼하는 듯 했습니다.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박인환님의 '목마와 숙녀'에서 >


음악이 멎었습니다.
그녀의 기억도 멎었습니다.
잿가루 흩날리듯 아물아물 가물거리는 육신의 소리만이 간혹 그녀의 신경줄을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살아 있었다면 처절하게 참패한 자신을 보고 분개하여 스스로를 물어뜯어서라도 분풀이를 했을 것입니다.
차라리 죽어 있었던 게 나았습니다.

훗날 그녀가 남을 사랑하게 된 최초의 사람이 그 남자였음을 아직도 후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녀는 징글벨 종소리 속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읊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모두들 즐거운 성탄 되세요.

-- Your-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