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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의 눈내리는 밤에....
크로노스 | 추천 (0) | 조회 (324)

1999-12-29 02:00

너무너무 외롭다.
요즘엔 도대체 스트레스가 좀체로 풀리지 않는다.
가뜩이나 마음은 싱숭생숭한데 아 쓰바.. 밖에는 올해 들어 첫눈이 내리고 있다.
마음 한구석이 퀭~ 한 것이 영 못 견디겠다.
아아... 연말연시에 갈 데도 없고, 만날 여자 하나 없는 이 신세여....
나도 예전엔 잘나가던 놈이었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미국에 온지 벌써 4년....
여자없이 지내온 크리스마스가 올해가 처음은 아니건만 왜 이리도 옆구리의 빈자리가 요즘들어 더욱 추운지....
미국나이로는 서른이지만 한국나이로는 서른 둘...
여자하고 데이트 해본지가 벌써 몇 년이며 여자랑 해본지가 벌써 몇 년이냐.
딸잡는 것두 이젠 지겹다. 지겨버....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교회에 다닌다. 아니, 미국에서의 한인사회가 사실 교회를 떠나서 살아가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교회 청년회에는 나와 같은 서른살 동갑내기가 셋 있었다. 그런데 지난 몇 달 사이에 두 녀석이 한국에 나가서 덜컥 결혼을 하고 들어왔다. 그래서 나혼자 남았다.
그래도 옆에 두 녀석이 있을 적에는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 초초해 하지는 않았다.
그 중에 그래도 내가 인물도 제일 낫고, 똑똑하고, 돈도 많이 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습게 봤던 두 녀석이 갑자기 결혼해 버리자 약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준봉이란 놈의 와이프는 인물은 그저 그렇지만 생각하는 거나 말하는 거나 어느 모로 봐도 지보다 훨씬 똑똑한 와이프를 얻었다. 재호란 녀석은 어디서 22살 짜리 영계를 물어 왔으니 더 이상 언급을 하고 싶지 않다.

준봉이 녀석의 신혼방에 한번 갔다온 뒤로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엇그저께 청년회 새까만 후배 녀석이 예고도 없이 약혼을 해버렸다. 그것두 우리 청년회 여자애하고 말이다. 둘 다 학생이다. 남자새끼는 유학생이고.
내년 3월에 결혼한다고 한다.
우리 교회는 결혼을 하면 자동적으로 청년회에서 탈퇴된다. 그러니깐 작년까지만 해도 8명이었던 우리 청년회가 내년 3월 이후에는 단지 3명만 남게 된다.
게다가......
게다가....... 게다가 더 골 때리는 일은 내년도 청년회장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자식을 약혼한 다음날 만났다. 속은 좀 쓰리지만 그래도 명색이 선배로서 후배의 경사스러운 일에는 축하를 해줘야 하지 않는가. 축하한다고 했더니 녀석이 은근히 미안한지 괜히 쓸데없는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형, 내가 여자 하나 소개시켜줄까?" 그러는 거다.
아, 이 자식이 지금 누구 성격테스트하나? 이날 이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와서 그딴 소리야.
이 놈이랑 약혼한 년은 내가 청년회장에 당선이 확정된 순간(그것두 지 남자친구를 이기고), 열 받아서 씩씩거리고 있는 나를 위로한답시고 "오빠는 어떤 타입의 여자를 좋아해요?" 그러면서 당장이라도 내가 말만하면 데리고 올 수 있다는 표정을 지었었다. 그때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넘뇬들이 하는 짓이 똑같자나. 혹시 둘이 짜고 날 놀리는 거 아냐? 지금.

그래도 난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마음에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곧이어 놈의 2차 공격이 나의 귀를 쎼려갈겼다. "근데, 형. 형보다 한 살 많아도 돼?"
아아아.... 이 자식이 오늘 준비를 아주 단단히 해 왔구나.....
"생각있어? 엉? 생각있어?" 몽롱한 정신상태에서도 이성을 찾으려는 나의 의지를 그 녀석의 생각있냐는 물음이 자꾸만 방해했다. 정말로 거기가 교회만 아니었어도 난 분명히 한 대 쳤을거다.

그 때는 아주 아주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씨익 웃어주고 말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소개시켜 달라고 그럴 걸.... 하는 후회가 든다. 아아... 내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을까......

피~~~휴우우우우~~~~
누가 나좀 위로해 주지 않으시렵니까?

워싱턴 디씨의 눈 내리는 밤에
외로움과 쓸쓸함에 시달리고 있는 크로노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