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ndo
| 추천 (0) | 조회 (268)
2000-01-03 09:55
현재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글입니다.
20세기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교차한 시대라면,2000년대는 말그대로
'디지털 밀레니엄'이다.'미디어가 문화를 규정한다'는 명제처럼,디지털기술과 네트워크의 혁명적 발달은 전통적 문화 생산과 소비양식에도 지각변동을 강요하고 있다.21세기 디지털시대 문화의 현재와 미래 아날로그적 문화양식과 겪을 갈등과 화해를 시리즈로 짚어본다.
조선일보 편집자
네트워크로 뜨는 N세대 예술가들
미국에 유학 중인 가수겸 작곡가 신해철은 얼마전 대형 장난감가계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어린 아이들이 여러 멜로디와 리듬을 짜맞춰 노래를 만들도록 하는 장난감이 팔리고 있었다.그는 "몇년 안에 예닐곱살짜리 꼬마가 아버지 컴퓨터로 작곡한 노래를 인터넷에 띄워 스타가 되는 날을 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1세기 디지털시대 문화의 화두는 '아마추어리즘 빅뱅'이다.그 소용도리 중심에는 '네트워크의 아이들' N세대가 있다.컴퓨터와 쌍방향 네트워크라는 디지털 기술 혁명의 젖을 빨며 성장한 이세대는 더 이상 '수동적 문화 소비자'에 머무는데 만족하지 않는다."나도 할 수 있다"며 스스로 창작하고 참여 하려든다.그런 아마추어리즘 혁명의 기운은 이미 문화 각 분야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컴퓨터 통신 천리안은 두달 전 '엠피아(mpia)사이트를 개설 했다.작곡가나 가수-연주자를 꿈꾸는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직접 만든 곡을 띄우고,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사이트이다.두 달만에 80여의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이 곳을 무대로 산아 곡을 발표하고 있다.사이트를 찾아와 노래를 듣고 다운로드하는 회원도 5000명을 넘어섰다.
'엠피아' 대표 임기태씨(30)는 "싸고 다양한 컴퓨터와 음악 프로그램 덕분에 21세기는 누구나 집에서 손쉽게 음악을 창작 할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판타지 소설가 김예리(22.서울대 영문과4년)씨는 디지털시대 문학동네에 몰아칠 아마추어리즘 돌풍을 보여주는 주인공이다.대원외고 시절 작품을 구상한 김씨는 서울대에 입학한 96년 컴퓨터통신에 판타지소설 '용의 신전'을 연재하기 시작했다.'용의 신전은 네티즌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며 102만 7804회라는 경이적 조회수를 기록했다.출판사가 달려들었고,
지난해 8월부터 나온 7권짜리시리즈는 35만권이나 팔렸다.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유니텔 등ㄴ 컴퓨터 통신 서비스업체들이 운영하는 '사이버문학(통신문학)'코너는 '제2의 김예리' 를 꿈꾸는 아마추어작가들의 해방구이다.매달 수백명이 글을 올린다.이 곳에선 기존 문학의 틀과 가치가 철저히 무시된다.비평의 권위나 등단에 따르는 험난한 통과의례도 없다.유일한 평가 기준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었는가하는 '조회수'이다.정통 문학지 인터넷 홈페이지들도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문을 열어놓았다.
N세대들과 친숙한 만화분야도 다름아니다.10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아마추어만화가들 작품을 인터넷과 PC통신으로 데뷔시키는 '만화 웹진'이 늘고 있다.'한국 아마추어 만화세상'이
운영하는 웹진 '카클(kacl)'과 아마추어 전문 만화웹진 '넷터치(netouch)'는 물론,PC통신업체마다 사이버 만화방을 운영한다.
'10만원 비디오 영화제'는 국내영상 예술에 움트는 아마추어리즘의 싹을 잘 보여준다.
이화여대 박물관이 3개월마다 주최하는 이 영화제는 제작비가 싸게 먹히는 비디오로 다양한 영상실험을 한다는 취지로 97년6월에 시작했다.초기엔 10여편이 출품 되던게 요즘엔 50~70편씩 나온다.미국 유럽에서 이미 주목받고있는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의 대중화는 21세기영상 예술의 아마추어리즘을 폭발시킬 뇌관이다.소형카메라로 혼자 촬영을 해내고,편집,인화,사운드 믹싱 등 스튜디오에서 비싸게 하던 작업도 집에서 컴퓨터 한대로 해결할 수 있다.
전통적인 극장도 필요 없다.인터넷과 통신 네트워크라는 '열린 극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성 문화 전문가집단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아날로그시대 유물로 밀려날 것인가.아니면 소수이지만 더욱 강력한 파워엘리트가 될까.산업혁명시대가 저물면서 소리없이 시작된 디지털시대 문화혁명. 문화생산과 소비에서 새 패러다임을 강요하는 거대 물결은 어느새 우리 발목까지 차올라와 있다.
조선일보 권혁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