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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비밀병기 3편 -CRAP-
moby | 추천 (0) | 조회 (254)

2000-01-03 11:36

사막의 밤은 예상대로 빨리 찾아왔다. 어둠은 낮의 혹서와는 반대로 매세운 추위를 동반했다. 피터 컥션 상병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리비아 국경으로 들어선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는 벌써 몇시간째 황량한 사막의 밤길을 걷고 있었다. 그나마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감을 얻을 수 있었다.
상병으로서는 실전에 투입된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다. 2년 전 그는 영국 공수부대의 일원으로 포클랜드전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멀쩡하던 동료들이 하루 아침에 시체로 변하는 것을 여러번 목격했다. 포클랜드전이 끝나자마자 제대신청서를 냈다. 민간인 생활이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간사회는 상병이 기대했던 만큼 그렇게 녹녹하지가 않았다.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비정함은 전장터보다 더했다. 고민 끝에 그는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6개월간의 기나긴 방황 끝에 그가 찾은 돌파구는 바로 프랑스 외인부대였다. 과거를 잊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말처럼 그곳에서는 그가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온갖 부류의 인간군상들이 득실댔다. 또 최소한 일년에 한번 이상은 세계 각지의 오지에서 모험을 즐길 수 있었다.
공수부대 복무시절 고공강하와 스쿠버다이빙 교육을 이수한 전력과 체력측정성적이 좋은 점 등이 감안돼 그는 훈련소를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 제2외인공수연대로 배속됐다. 제2외인공수연대가 주둔한 지중해 서부에 위치한 프랑스령 코르시카섬은 프랑스군 가운데서도 최정예로 손꼽히는 연대가 훈련하기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섬을 둘러싼 긴 해안선은 수상.수중침투훈련에는 제격인데다 부대 근처에는 해발 2,710m인 몬테 친토산을 비롯한 고산지대가 있어 산악훈련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더구나 부대 근처에는 연대 전체가 강하를 할 수 있는 평지도 여러군데 있었다.
상병이 처음 배속된 곳은 해상전이 전문인 제3중대였다. 그는 이곳에서 10개월간 모범사병으로 근무했다. 이 기간 그는 영국의 SBS, 미국의 SEAL, 프랑스의 Commando Hubert 등 국내외의 전문가집단들과 함께 여러 차례 합동훈련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상병은 좀더 짜릿한 활동을 해보고 싶은 생각에 미지의 세계가 있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미지의 세계는 바로 근처에 있었다. 연대 직할인 특수임무대(Commandos de Recherche st d'Action dans la Profondeur)이 바로 그것이었다. 흔히 CRAP으로 불리는 이 특수임무대는 특수부대 가운데 특수부대로 전략차원의 비밀정보수집이나 목표타격이 주임무였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GIGN 등과 함께 또는 단독으로 대테러전임무도 함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50명 남짓한 소부대였다. 이곳에서 그는 6개월 이상 고공강하(HALO/HAHO), 수중침투. 폭파, 통신술, 장거리정찰술, 무성무기 사용법, 시가전 등 고난도의 훈련을 집중적으로 이수했다.
CRAP은 물론 제2외인공수연대 산하이지만 실제 사용자는 대외정보부(DGSE)였다. 그만큼 비밀공작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적도에 면한 남미 기이나의 정글에서부터 소련 북방함대 모기지인 무르만스크 해저까지 온갖 형태의 비밀침투 및 정찰활동에 투입됐다.
아프리카 지부티에서의 사막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을 서두르던 CRAP대원들에게 새로운 특명이 떨어졌다. 귀국 대신 북아프리카의 옛 프랑스식민지인 챠드로 급히 이동하라는 지시였다. 84년 6월 어느 무더운 날의 일이었다.

식민지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독립국가로 출발한 대다수의 제3세계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챠드 역시 60년 프랑스로 독립한 이래 계속되는 정정불안에 시달렸다. 판이한 인종, 종교, 문화, 경제환경. 모든 갈등요소를 껴안은 채 독립국가로 탈바꿈한 챠드는 3차례에 걸친 내전에 휘말렸다. 특히 북부지역은 회교도가 대다수인 반면 남부거주민들은 기독교도라는 지역적.종교적 갈등요소는 내전 양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83년 6월 구쿠니 전 대통령은 리비아로부터 대규모 군사지원을 얻어 북부인들을 규합해 이센느 아브레 대통령이 이끄는 챠드정부에 대항해 내전을 일으켰다. 반군은 북부 파야르르조를 근거지로 남진을 시도했다. 반군 뒤에는 리비아 외에도 소련이 버티고 있었다. 위기에 처한 아브레 대통령은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했다. 프랑스는 미국과 함께 국제분쟁 양상으로 치닫기 시작한 챠드내전에 개입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는 이 내전에 외인부대와 해병공수부대를, 미국은 공군과 대테러부대인 델타포스를 각각 파병했다. 미국은 프랑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새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델타포스 요원들은 챠드에 도착하자마자 정부군에게 스팅어 미사일 조작법 전수에 주력했다. 리비아 공군기에 혼이 난 챠드정부군으로서는 스팅어 미사일 공급과 조작훈련이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제2외인공수연대를 주축으로 한 프랑스군 선발대는 정부군과 합동으로 반군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이런 조직적인 반격 덕택에 반군 주력은 리비아로 퇴각했다. 그러나 반군이 퇴각했다고 해서 안심하긴 일렀다. 무엇보다 리비아가 반군의 후견인으로 자처하고 있는 동안 언제 똑같은 상황이 재연될지 모를 일이었다.
프랑스는 외교경로를 통해 가다피가 이끄는 리비아정부에 여러 차례 경고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가다피는 강심장이었다. 미국과도 맞서온 가다피로서는 프랑스의 경고메시지쯤이야 쉽게 무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가다피의 그런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자존심이 땅에 떨어져버린 프랑스정부는 구두경고보다는 강도 높은 행동으로 결연함을 과시할 필요성을 느꼈다. 프랑스정부는 처음 리비아 국경지역에 대한 제한적인 공습이나 포격을 고려했다. 그러나 그 경우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국가들은 물론이고 회교권 아랍국가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 것이 분명했다. 미국과 영국 역시 분쟁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민 끝에 프랑스정부는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결국 DGSE에 넘어갔다. DGSE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안을 제시했다. 바로 리비아가 자국 영토에서 양성하는 테러조직에 대한 비밀기습을 감행하자는 안이었다. 이 계획안에 대해 공산권국가들은 여전히 반발할 것이지만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는 대다수 아랍권국가들은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들 역시 테러범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영국도 국제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마당에 굳이 마다할 리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예상대로 미국과 영국은 프랑스의 안에 찬성했다. 가디피가 눈엣가시 같았던 미국은 아예 작전에 필요한 인적.물적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해왔다. 미국은 특히 프랑스가 기습을 전개할 목표물에 대한 인공위성 정찰사진 제공은 물론이고 델타포스 및 SEAL 6팀 등 대테러특수부대원들까지 합류시킬 의향을 비췄다.
이해당사국들의 의향을 파악한 DGSE는 CRAP에 이 특수임무를 맡겼다. 컥션 상병이 국경을 넘어 리비아로 잠입한 것도 바로 이 작전을 위한 임무였다.
DGSE는 본격적인 작전에 앞서 모두 6개팀을 사전에 잠입시켰다. 각팀은 팀장을 포함해 모두 4명으로 구성됐다. 당연히 각팀에게 주어진 정찰 목표도 달랐다. 침투방식은 육상침투였다. 당초 DGSE는 고공강하를 이용한 방식을 선호했다. 그러나 침투 예정일을 앞두고 기상변화가 심해 대신 짚차를 이용한 육상침투로 바뀌었다. 침투방식이 결정되자 DGSE는 정찰위성을 통해 확보한 목표물 사진들을 건넸다. 그러나 지상 200km 이상의 상공에서 찍은 정찰위성 사진도 해상도는 기대 밖으로 선명하지 못했다. 컥션 상병은 왜 DGSE가 정찰조를 투입키로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이번 작전을 위해 CRAP측에 파견된 DGSE 연락관은 정찰팀이 목표물에 가능한한 접근해 사진촬영과 함께 모든 정보를 수집할 것을 지시했다. 그는 특히 수집되는 정보는 지체하지 말고 실시간으로 보내라는 지시도 빠뜨리지 않았다. 물론 이 작전을 위해 적외선야시경과 원격조종전자감시장비(IREMBASS) 같은 최첨단장비가 제공됐다.
상병이 이끄는 팀에게 할당된 목표물은 테러범들을 재교육시키는 훈련소였다. 정보에 따르면 이 훈련소에서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소속 특수공작원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유럽에서 암약하는 테러단원들도 포함돼 있었다. 따라서 신참들을 양성하는 여느 훈련소에 대한 침투보다는 좀더 세심한 주의가 요구됐다.
일단 국경을 넘어서자 컥션팀은 걸음을 재촉했다. 이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목표물을 향해 전진했다. 다음닐 새벽녁까지 상병의 정찰팀은 목표물에 절반 가량 이르렀다. 이들은 동이 트기 직전 땅을 파 주위의 건풀 등을 덮은 2개의 은폐호를 만들었다. 워낙 솜씨가 정교해서 그런지 은폐호는 자세히 보기 전에는 발각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대원들은 은폐호 안에서 교대로 잠을 청했다. 다시 해가 지자 이들은 감쪽 같이 은폐호를 치운 뒤 행진을 계속했다. 그런 방식으로 목표물에 접근하는데 꼬박 이틀밤이 소요됐다.
동이 트기 한시간 전 선두에 선 컥션 상병의 몸에 열기가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상병은 적외선망원경으로 전방을 살폈다. 1km 전방에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6채의 건물이 보였다. 건물 안에서 사람의 움직임도 감지됐다. 그는 품 안에서 지도를 꺼냈다. 좌표를 보아서는 목표물이 틀림없었다.
바로 그의 팀이 찾던 목표물이 나타난 것이었다. 상병은 대원들과 함께 서서히 목표물로 접근했다. 동이 틀 무렵 그는 훈련소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언덕에 올랐다. 그곳에서는 훈련소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은폐호를 만든 뒤 그 속에 몸을 감췄다. 몸을 숨긴 뒤 얼마되지 않아 훈련소 안에서 소음이 들렸다. 밖으로 난 은폐호의 조그만 구멍을 통해 망을 보던 대원 두명은 반사적으로 망원경으로 그곳을 살폈다. 그 사이 상병은 휴대한 1,100mm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훈련소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통신병은 망원경으로 훈련소를 살피던 동료들이 불러주는 정보를 타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몇시간의 감시 끝에 상병은 훈련소 안에 대략 30-40명의 인원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 가운데 7-8명은 리비아 군복의 교관요원으로 파악됐다. 나머지는 경비병과 지원병력이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는 인원은 대략 20여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훈련병들은 몇시간 동안 AK-47 자동소총 사격훈련을 한 뒤 다시 권총 사격 연습을 했다.
훈련병들의 훈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소련제인 RPG-17 휴대용로킷포 훈련에 전념했다. 정작 정찰팀을 까무라치게 놀라게 한 것은 이들의 마지막 훈련이었다.
망원렌즈로 마지막 훈련 모습을 담기에 여념이 없던 상병의 눈에 특이한 무기가 잡혔다. 특이한 무기는 다름 아닌 독일제 암버스트 휴대용미사일이었다. 미국제 스팅어미사일과 비슷한 암버스트 미사일은 테러범들에게는 가히 환상의 무기였다. 무엇보다 짧은 거리에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목표물에 발사할 수 있어 도시게릴라들에게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었다. 상병은 금수품목인 이 미사일이 무기중개상을 통해 리비아군 손에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상병은 손에 진땀이 나는 것을 느끼면서 무전병에게 이 사실도 타전할 것을 지시했다.
훈련소에는 사막지형에 알맞는 레인지 로버스, 도요타 트럭을 포함한 6대의 차량들이 잘 위장된 차고에 주차되어 있는 것도 관측됐다. 또 6채의 단층건물 가운데 한채는 지휘소 겸 통신실로, 두채는 숙소로, 나머지는 강의실과 무기고 등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저녁 9시가 되자 훈련소가 어둠에 잠겼다. 소등을 한 것이 분명했다. 상병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상병과 무전병이 엄호를 하는 사이 다른 두명은 마치 뱀처럼 철조망으로 접근했다. 철조망까지의 접근엔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관측 결과 훈련소의 경비병들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경비를 설뿐 주위순찰은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심하긴 일렀다. 철조망에 접근한 대원들은 10분 가량 몸을 땅바닥에 붙인 채 주위를 살폈다. 역시 아무런 낌새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그들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지름 20cm 가량의 구멍을 두개 팠다. 그런 뒤 그들은 휴대한 IREMBASS를 매설했다. 모래층인 까닭에 매설작업에는 불과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작업이 끝나자마자 대원들은 다시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퇴각했다.
이제, 훈련소에서의 모든 움직임은 인공위성을 통해서 24시간 감시가 가능해진 것이었다.
정찰임무가 끝난 뒤 현지에서 머무는 것은 곧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컥션 상병이 이끄는 정찰조도 이 철칙에 괸한한 예외가 아니었다. 정찰조는 은폐호를 흙으로 모두 덮은 뒤 재빨리 현장을 벗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곧장 헬기를 부르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은폐호에서 1km 가량 떨어진 곳으로 먼저 퇴각했다. 그곳에서 이들은 배낭과 식수가 든 통들을 땅에 뭍었다.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였다. 이 작업이 끝나자 그제서야 이들은 구조용 헬기를 불렀다. 헬기와의 합류예정장소는 1차 퇴각지에서 10km 가량 벗어난 지점이었다. 3시간이 넘어서 정찰대원들은 이번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이 비밀리에 파견한 M-60 블랙호크 헬기에 오를 수 있었다. 헬기에는 다른 임무에 투입된 동료들이 이미 탑승해 있었다. 이들은 자랑스럽게 지난 며칠 동안 자신들의 무용담을 털어놓았다.
일단 기지로 귀대한 정찰대원들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런 뒤 다시 정찰임무에 투입됐다. 정찰을 통해 DGSE는 리비아가 세계 각국의 테러범들을 데려다 훈련을 시키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정찰을 마친 목표물에 대한 기습공격이었다. 컥션 상병이 처음 정찰한 목표물에 대한 기습공격에 나선 것은 6주 뒤였다. 84년 8월말 상병은 다른 대원들과 함께 블랙호크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작전에 투입된 블랙호크기는 특수작전에 필요한 각종 비행장치를 갖춘 최신형이었다.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기 위해 고도를 최대한 낮춘 채 블랙호크기는 이날밤 목표물에 접근했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블랙호크기는 모두 3대였다. 훈련소는 정각 저녁 9시 소등했다는 것이 IREMBASS를 통해 밝혀졌다. 야간보초근무를 선 리비아군 경비병들도 별다른 경계태세를 갖추지 않은 채 건성으로 보초근무에 임했다. 그러다보니 경비병들은 블랙호크기의 접근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블랙호크기가 훈련소 상공에 도착한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블랙호크기가 훈련소 마당에 착륙을 시도하면서 먼지가 일었다. 경비병들은 그제서야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하늘에서 뭔가 불빛이 내려오는 것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경비병들은 반사적으로 하늘을 쳐다보다 그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집채만한 헬기가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비병들은 자동소총을 헬기에 겨누었다. 그러나 미처 총을 발사하기도 전에 헬기 쪽에서 섬광이 일었다. 헬기에 타고 있던 CRAP 대원 하나가 휴대용로킷포를 발사했기 때문이었다. 경비병들은 즉사했다.
착륙에 성공한 3대의 헬기에서는 모두 36명의 그림자가 뛰쳐나왔다. 이들은 재빠른 동작으로 각자 맡은 목표물로 향했다. 컥션 상병이 속한 12명의 기습팀이 맡은 목표물은 지휘소와 통신실이 있는 건물이었다. 4명의 대원들이 먼저 휴대용로킷포 사격을 가했다. 이어 상병을 포함한 8명의 대원들은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이들은 닥치는대로 적군으로 보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총알세례를 퍼부었다. 한편 나머지 팀들은 리비아군과 테러범들이 곤히 자고 있는 숙소를 향해 모든 화력을 집중시켰다. 그런 뒤 이들 역시 안으로 진입해 아직 숨을 쉬고 있는 적군을 하나씩 사살했다. 적군이 모두 사살되자 이들은 다시 이들의 얼굴을 비디오카메라로 한명씩 촬영했다.
기습대원들은 지휘소, 통신실, 무기고 등에서 필요한 서류와 휴대가 가능한 장비는 모두 헬기로 옮겨놓았다. 그런 뒤 다시 이곳들에 시한폭탄을 장치했다.
기습에서부터 폭약설치까지 걸린 시간은 40분이 채 안됐다. 모든 임무가 끝나자 대원들은 헬기에 올랐다. 헬기는 새벽공기를 가르며 하늘로 높이 치솟았다. 하늘에 오른지 3분도 안돼 사막 한 가운데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일어났다. 목표물이 잿더미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모든 임무가 성공적으로 완료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한편 리비아군은 새벽의 기습에 망연자실했다. 기습 사실은 새벽 단잠에 취해 있던 리비아 통치자 카다피에게도 이내 전해졌다. 카다피는 노발대발했다. 그는 이번 기습이 누구의 소행인지 짐작이 갔다. 프랑스와 미국의 소행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그렇지만 그는 양국에 대해 즉각적인 보복을 지시하지는 않았다. 자칫 그 경우 이번 기습보다 더 큰 보복이 우려됐기 때문이었다.
한편 코르시카의 모기지로 돌아온 CRAP 대원들을 가장 먼저 맞은 것은 가족들이 아니었다. 미테랑 대통령이 보낸 보르도산 최고급 샴페인이었다. 그동안 술과는 담을 쌓아온 대원들은 샴페인을 터트렸다. 샴페인에 얼굴이 불콰해진 대원들은 약속이나 한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외인부대가였다. 사막의 모래바람을 헤치면서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낸 CRAP 대원들로서는 자신이 외인부대의 최정예요원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