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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동백꽃 피는 해우소 ― 김태정
bibig00 | 추천 (0) | 조회 (83)

2024-04-12 17:23

나에게도 집이란 것이 있다면

미황사 감로다실 옆의 단풍나무를 지나

그 아래 감나무를 지나

김장독 묻어둔 텃밭가를 돌아

무명저고리에 행주치마 같은

두 칸짜리 해우소

꼭 그만한 집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방에도 창문이 있다면

세상을 두 발로 버티듯 버티고 앉아

그리울 것도 슬플 것도 없는 얼굴로

버티고 앉아

저 알 수 없는 바닥의 깊이를 헤아려보기도 하면서

똥 누는 일, 그 삶의 즐거운 안간힘 다음에

바라보는 해우소 나무쪽창 같은

꼭 그만한 나무쪽창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마당에 나무가 있다면

미황사 감로다실 옆의 단풍나무를 지나

그 아래 감나무를 지나 나지막한 세계를 내려서듯

김장독 묻어둔 텃밭가를 지나 두 칸짜리 해우소

세상을 발로 버티듯 버티고 앉아

똥 누는 일 그 안간힘 뒤에 바라보는 쪽창 너머

환하게 안겨오는 애기동백꽃,

꼭 그만한 나무 한 그루였으면 좋겠다.

 

삶의 안간힘 끝에 문득 찾아오는

환하고 쓸쓸한 꽃바구니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