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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나무의 다비식 ― 이태관
bibig00 | 추천 (0) | 조회 (54)

2024-04-12 17:24

물소리 와글와글 끓어오르는 밤이었다

비는 내리고, 어디선가

배고픈 고양이 울음소리도 들려왔을 것이다

개울가 물고기는 아직도 눈을 치뜨고 있는지

갈참나무 잎사귀들이 묵묵히 눈 희번덕거리며

불침번 서고 있는 저물녘,

마을 앞 느티나무의 한 생이 어느덧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 있었다

 

어느 생도 시간의 매를 감내할 수 없는 것인지

재개발을 위해 옛 마을이 허물어져 가는 밤

가로등도 떠날 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잠들지 못하고

끝내, 그 밤을 견디기 어려웠는지 건넛말 달수네

한밤에 떠나나 보다

마을을 휘돌아 나가는 차의 불빛이

바람벽에 제 유언 하나 새겨놓는다

미처 수습하지 못한 말들이 사라진다

길 잃은 고양이 울음소리도 들려왔을 것이다

신열을 앓듯 선잠에서 깨어난 아침,

 

마을 앞 당산나무가 제일 먼저 몸을 허물었다

잘렸던 시야가 텅 비었다

공(空)을 이룬 하늘, 눈에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