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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풍장 — 최영철
bibig00 | 추천 (0) | 조회 (31)

2024-04-22 17:18

멀리 갈 것도 없이

그는 윗도리 하나를 척 걸쳐놓듯이

원룸 베란다 옷걸이에 자신의 몸을 걸었다

딩동 집달관이 초인종을 누르고

쾅쾅 빚쟁이가 문을 두드리다 갔다

그럴 때마다 문을 열어주려고 펄럭인

그의 손가락이 풍장되었다

하루 대여섯 번 전화기가 울었고

그걸 받으려고 펄럭인

그의 발가락이 풍장되었다

숨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려고

창을 조금 열어두길 잘 했다

옷걸이에 걸린 그의 임종을

해가 그윽히 내려다보았고

채 감지 못한 눈을 바람이 달려와 닫아주었다

살아있을 때 이미 세상이 그를 묻었으므로

부패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진물이 뚝뚝 흘러내릴 즈음

초인종도 전화벨도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지는 눈물을

바람이 와서 부지런히 닦아주고 갔다

몸 안의 물이 다 빠져나갈 즈음

풍문은 잠잠해졌고

그의 생은 미라로 기소중지되었다

마침내 아무도 그립지 않았고

그보다 훨씬 먼저

세상이 그를 잊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식아 희야 하고 나직이 불러보아도

눈물 같은 건 흐르지 않았다

바람만 간간이 입이 싱거울 때마다

짠물이 알맞게 배인 몸을 뜯어먹으러 왔다

자린고비 같은 일 년이 갔다

빵을 꿰었던 꼬챙이만 남아

그는 건들건들 세월아 네월아

껄렁한 폼으로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경매에 넘어간 그를 누군가가 구매했고

쓰레기봉투에 쑤셔 넣기 전

쓸데없는 물건으로 분류된 뼈다귀 몇 개를

발로 한번 툭 걷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