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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하얀 민들레 — 조미자
bibig00 | 추천 (0) | 조회 (35)

2024-04-22 17:19

이제는 짐을 줄여야 할 나이

날아갈 듯 가벼워야 하리라

 

버릴 것 찾아 창고를 뒤지다 마주친

전기밥솥, 점잖게 앉아 있다

보름달처럼 둥실한 몸통에 앉은키도 의젓한 십인 용

그만은 해야 두 애들 도시락에 남은 식구 점심이 되었지

오로지 취사와 보온에만 속을 달구던 것이

쥐 빛 머리 위로 먼지가 뽀얗다

 

저녁에 쌀 씻어 앉혀 놓고

새벽에 단추만 살짝 눌러 주면

밥물 넘을 걱정 없이 단잠 한숨 더 재워 주고

추운 겨울 따시게 밥 품어 주던

저것이 언제 창고로 밀려 났더라?

 

쌀도 웬만한 열로는 응어리가 안 풀려

압력으로 암팡지게 열을 올려야

찰진 밥이 되는 세상에서

찰기 없는 밥 품고만 있던 어느 날

날벼락 맞듯 창고로 밀려 났으리라

 

오늘도 청암 양로원 담장 밑엔

나란히 나부끼는 하얀 민들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