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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시치미꽃 — 이명윤
bibig00 | 추천 (0) | 조회 (37)

2024-04-23 17:31

오늘도 건강한약국 앞 인도에서

도라지 파는 할매

- 막 캐 온 것이여 선상님 한 소쿠리 사 주소 차비해 집에 갈랑께

행인들은 안다

박스 안에 수북할 막 캐 온 도라지들

버스가 지나가고 꽃무늬 양산이 지나가고

길고양이 하품을 끌며 지나가고

 

할매와 도라지는

남남처럼 앉아있다

 

무릎을 오므린 채 손등 위에 올려놓은 얼굴

비쩍 마른 저 도랑에 꽃이 핀다

메이드 인 산골 호미 우리 할매

개나리꽃 진달래꽃 좋아라 좋아라 웃던 얼굴

도시 한복판에 그림자로 앉아

호미는 밭에서 녹슬어 울고

호미 잡던 손엔 물 건너온 도라지

 

그늘 잎 띄우고,

청승 잎 띄우고,

 

우리 할매 늘그막에 꽃이 되었네

이 좋은 봄날, 나비도 벌도 찾지 않는

꽃으로 피었네